
♧ 사촌형님
그 시절
그 땅에도
사람이 살았단다
산에도 가지 마라 바다에도 가지 마라
산불근山不近 해불근海不近* 휘휘 내닫다,
4대독자 내 아들 길에서 낳았단다 기면서 구르면서
바위틈에 숨어들어 입 꽁꽁 눈 꽁꽁 가슴 꽁꽁 묶어놓고
늦가을 건천乾川도 목이 타 울던 시절,
몸의 물
슬며시 받아
마른 입술
축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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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근山不近 해불근海不近 : 4․3사건 당시 산사람도 무섭고 군경토벌대도 무섭다는 뜻으로 산에도 바다에도 가까이 가지 말라고 사람들 사이에 널리 쓰이던 말.

♧ 꽃도 아픈 사월에
뭇매처럼
쏟아지는
부신 빛이 아려서
지천으로 봄까치꽃
온몸이 다 퍼렇다
하늘도 아래로 내려
꽃에 입을 맞춘다

♧ 눈물이 된 섬
이름만 붙이면 죄가 되는 섬이 있지
젊은 것도 죄 똑똑함도 죄 통일조국 원한 것도 죄 중산간 마을에 산 것도 죄 남편 행방 몰라도 죄 형과 아버지가 집에 없는 것도 죄 동굴에 숨은 것도 죄 바닷가 마을로 피난 못 한 것도 죄 가을걷이로 늦게까지 밭에 있어도 죄 3․1절 기념식에 참석한 것도 죄 사사건건이 모두 죄 숨을 곳 찾아 섬을 등지고 싶었지 빨갱이 섬이라 했지 창살 없는 감옥이었지 불구덩이 속으로 기자들이 왔댔지 울부짖는 도민을 본 광주의 기자들* 동란의 제주를 카메라에 담았지 떠나간 사람들과 남겨진 사람들 쓰러지는 광주를 담은 파란 눈의 기자처럼 언론의 거짓말을 기록하고 알리고 제주의 눈물을 닦고 또 닦았지
사람아, 사람이기를 끝끝내 잊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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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8년 6월 29일부터 14일간 제주4․3 현장을 취재하러 왔던 광주 호남신문 기자들.

♧ 별의 기원
동광 육거리에 저항의 뿌리 하나
불귀의 객이 된 청년들이 보인다 탐라의 푸른 들판 붉은 피로 젖던 그날, 풀뿌리 하나에도 세금이 매겨지고 신목이 잘리고 당목이 베어지던, 진정한 해방은 공출 없는 세상이라 탄압이면 저항이라 물러설 수 없는 분노 첫머리에 이름 얹던 젊은 피가 솟구치며 외친다,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마라
신새벽 동쪽 하늘에 외롭고 높은 그 별
* 김영란 시집 『동백 졌다 하지 마라』 (한그루, 2025)에서
* 사진 : 어느 시인이 '봄까치꽃'이라고 부르자는 큰개불알풀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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