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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김수열 시집 '날혼'의 시(4)

by 김창집1 2025. 5. 13.

 

 

할망바당

 

 

  일고여덟에 어머니 물질 가믄 불트혁 아래서 하올락 하올락 헤엄을 배우고 열두세 살에 어머니로부터 태왁 물려받아 열대여섯에 어머니 조름 쫓아다니멍 물질을 배왔주 열일고여덟 나난 제라허게 물질 시작허연 마흔 넘어 가난 중군 지나 상군 되었주

 

  어머니넨 무명옷 입었덴 허는디, 우린 광목으로 시작허연 고무옷 나오난 겨울철에도 춥지 안 허고 오래 물질 허여지고 납덩이 허리에 차난 바당 소곱도 잘 가지고 게난 망사리도 가득허고……

겐디 머리가 아파 죽게 아파, 뇌선 어시민 물에 들 수가 없어 처음엔 하나 먹다가 나중엔 두 개 세 개, 물에서 나왕도 또 먹고

 

  이젠 동무릎 몬 녹아부난 밭일 설러분 진 오래 되고 경허여도 바당밭은 어떵어떵 댕겨점신게 동네 젊은 해녀들이 고치 들엉 도와주난, 보행기 의지허영 갯것이 강 할망바당에 들민 맘은 편안허여 이디저디 아픈 것도 싹 잊어불고

 

 


 

하짓날

 

 

양지공원 그늘막

광목 치마 할망 양편으로

이마 주름 자글자글한 할망들 서넛, 부채질로 더위 달래는데

한 할망 핸드폰 요란하게 끄면서,

 

-아이고, 이노무 하르방 냉장고 문만 열민 먹을 거 천진디 그걸 못 촛아 먹엉……

-누게?

-누겐 누게우꽈, 우리 집 하르방이주

-메시깨라, 이건 무신 말? 게난 이제도록 살안? 하이고 선선허여

-게매 말이우다. 어떵허민 좋으코양?

-뭐센 고라도 이신 게 나신다, 생각해보라게 강생이도 키왐시녜게?

-게매예

 

때마침 양지공원 확성기에선

몇 번 유해, 화장 끝났으니 유족들은 대기 하라는

안내 방송이 반복해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세 그믓에 도장 찍고

 

 

선거철만 되면 돈봉투가 돌고

고무신도 덩달아 돌고 돌던 시절이었다

 

시골에 혼자 사는 노모를 찾아간 면서 기 아들은

안 호주머니에서 마른 거 한 장 든 봉투 건네며,

어머니, 한 그믓이우다

모레 투표장에 강 꼭 한 그믓에 찍어사 헙니다예!

-기여 기여 고맙다 한 그믓, 알았저

 

투표 하루 전날 할머니를 찾은 대학생 손자가

흰 고무신 든 봉투를 두 손으로 건네며,

할머니, 두 그믓이우다 작대기 두 개 그서진 디

거기 꼭 찍어사 헙니다예!

-하이고 우리 손지 착허다, 알았저 두 그믓

 

혼자 사는 그 노인네

면서기 아들 떠올리니 대학생 손자 생각

대학생 손자 떠올리니 면서기 아들 생각

 

요노릇을 어떵허코 고민하다가

결국 투표장에 줄을 서서

아들도 내 새끼 손자도 내 새끼 뽀글뽀글 파마머리 굴리다가

애비 아들 합친 세 그믓에 당당하게 도장 탁 찍었다

그래서 그 섬엔 예부터 무소속이 많았대나 어쨌대나

 

마른 거 한 장이면 동네 점방에서

막걸리 세 병 사고도 우수리가 남던 시절이었다

 

 


 

방법

 

 

어린 시절 유독 개씹*이 잦았다

어머닌 쪼가리 무명천으로 눈가리개를 만들었지만

개씹 때문에 창피했고

가리개 때문에 더 맘 상했다

-아이고 아이고 개씹났져

-아이고 아이고 애꾸됐져

사내아이 계집아이 할 것 없이 개씹 타령을 했다

 

그런 날 어머니는 내복 벗겨 이 잡는 대신

호롱에 달군 이 불바농을 어린 속눈썹에 갖다 대고는

-할마님아 철 어신 아이우다

-할마님아 분시 어신 아이우다

속눈썹 주변을 콕콕 찌르는 시늉하며

불러도 오지 않는 삼승할망을 찾았다

 

발바닥이 간질간질하여

문득 잠에서 깨면 내 발바닥에 코를 박고

-움직이지 말라

-고만 이시라

두 발바닥을 화선지 삼아 검은 먹글씨로

또박또박 새겨 놓고 있었다

 

天平

地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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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래끼의 제주어.

 

 


 

갈칫국

 

 

돗거름 내는 날이면 어머니는 으레 갈칫국을 끓였다

책 보는 사람 찾아가 택일을 하고

동네 남정네들이 와서 수눌어 돗거름 내는 날이면

토막 낸 갈치에 늙은 호박 투박투박 썰어

새벽 조반부터 갈칫국을 끓였다

 

동네 삼춘들이 갈중이 차림으로 집에 오면

아버지와 삼방에 둘러 앉아 갈칫국을 먹었다

담요로 정성껏 싸맨 항에서 오메기술 꺼내고

국사발마다 두툼한 갈치 한 토막이 들어간

갈칫국을 먹는 동안

 

아이 덜은 궤 기 안 먹는 거여

 

어린 우리는 반지기 낭푼밥 앞에 놓고

정지에 멜싹 앉아 어머니와 갈칫국을 먹었다

갈치 없는 갈칫국을 먹었다

 

얼른 커서 통시에 돗거름을 내고 싶었다

삼방에 앉아 오메기술에 갈칫국을 먹고 싶었다

두툼한 갈치가 들어간 갈칫국을 먹고 싶었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김수열 시집 날혼(삶창시선, 2025)에서

                                           *사진 : 다큐 물꽃의 전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