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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조한일 시집 '낮은 말 받아쓰기'의 시(3)

by 김창집1 2025. 5. 15.

 

 

테이크이웃

 

 

이웃이란 단어의 온도를 재어보면

사람의 체온보다 훨씬 낮게 나온다

밖으로 나간다는 말 생각보다 싸늘해서

 

뜨거운 커피잔을 두 손 모아 감싸도

분당 0점 몇 도씩 떨어지지 않더냐

안에서 할 수 없는 말 밖에선 트이는지

 

빈말과 진담 섞어 혀의 파본 주고받다가

놓고 간 테이크이웃 컵 벤치를 불법 점유한다

버리고 떠난다는 말 두고 온 적 있는 것처럼

 

 


 

2인칭 시점으로 본 낙하

 

 

사과를 떨어뜨리니 뉴턴이 말을 바꾼다

과 패가 손아귀를 빠져나간 정략적 이별

 

과즙이 적나라한 바닥

유서처럼 낭자하다

 

땅속을 파고드는 따듯한 사과의 피

땡볕과 비바람이 각을 잡던 육신이라

 

사과에 흉터를 남긴

변명은 비루하다

 

쥐었다 놓친 방심에 봉인됐던 인력引力이 풀려

볼품없게 된 사과 도로 주워 닦았더니

 

도려낸 살과 뼈끼리

부둥켜안고 울고 있다

 

삶의 난간 동여매고 스스로 낙하하는

신발도 벗지 못한 한 생의 즙 마르기 전

 

죽어도 다시 놓지 않겠다

너를 아삭 베문다

 

 


 

면도날을 바꾸다

 

 

건물을 밀어버리듯 억새를 갈아엎듯

세상에 자란 것들 지나간 그 자리에

핏물이 고일지라도 깔끔하다 말하네

 

면도날이 무뎌졌다 세상 보는 내 눈처럼

다시는 아픔 없도록 오늘은 바꿔야지

단칼에 베인 역사도 다시 서지 않았더냐

 

 


 

그 여자가 변했다

 

 

길치가 멸종됐다 초행길 안내하고

과속단속 구간도 좌회전 남은 거리도

그 여자 알려주는 대로 복종하던 그날 밤

 

화살표가 무기인 일면식도 없는 그녀

목소리만 듣고서 믿고 몸 맡기나

이 남자 내비게이션 속 그 여자가 궁금하다

 

어느 날 내비 속 그 여자가 변했다

막다른 곳에서도 직진하라 부추긴다

하루만 쉬게 해 달라 여자를 내비둬라

 

다음날 내비 속에서 들려온 남자 목소리

앞차도 옆차도 그 남자가 이끄는 대로

도로 위 바퀴 달린 것들 어제처럼 굴러간다

 

 


 

소화기

 

 

오래된 구석에서

안전핀 부여잡고

 

정년이 되고서야

녹이 슨 자릴 뜬다

 

소방차

한 대와 맞먹는

부동의

붉은 근위병

 

 

            * 조한일 시집 낮은말 받아쓰기(가히, 2025)에서

                * 사진 그림 : 멕시코 모 식당에 걸려 있는 민속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