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테이크이웃
이웃이란 단어의 온도를 재어보면
사람의 체온보다 훨씬 낮게 나온다
밖으로 나간다는 말 생각보다 싸늘해서
뜨거운 커피잔을 두 손 모아 감싸도
분당 0점 몇 도씩 떨어지지 않더냐
안에서 할 수 없는 말 밖에선 트이는지
빈말과 진담 섞어 혀의 파본 주고받다가
놓고 간 테이크이웃 컵 벤치를 불법 점유한다
버리고 떠난다는 말 두고 온 적 있는 것처럼

♧ 2인칭 시점으로 본 낙하
사과를 떨어뜨리니 뉴턴이 말을 바꾼다
낭狼과 패狽가 손아귀를 빠져나간 정략적 이별
과즙이 적나라한 바닥
유서처럼 낭자하다
땅속을 파고드는 따듯한 사과의 피
땡볕과 비바람이 각을 잡던 육신이라
사과에 흉터를 남긴
변명은 비루하다
쥐었다 놓친 방심에 봉인됐던 인력引力이 풀려
볼품없게 된 사과 도로 주워 닦았더니
도려낸 살과 뼈끼리
부둥켜안고 울고 있다
삶의 난간 동여매고 스스로 낙하하는
신발도 벗지 못한 한 생의 즙 마르기 전
죽어도 다시 놓지 않겠다
너를 아삭 베문다

♧ 면도날을 바꾸다
건물을 밀어버리듯 억새를 갈아엎듯
세상에 자란 것들 지나간 그 자리에
핏물이 고일지라도 깔끔하다 말하네
면도날이 무뎌졌다 세상 보는 내 눈처럼
다시는 아픔 없도록 오늘은 바꿔야지
단칼에 베인 역사도 다시 서지 않았더냐

♧ 그 여자가 변했다
길치가 멸종됐다 초행길 안내하고
과속단속 구간도 좌회전 남은 거리도
그 여자 알려주는 대로 복종하던 그날 밤
화살표가 무기인 일면식도 없는 그녀
목소리만 듣고서 믿고 몸 맡기나
이 남자 내비게이션 속 그 여자가 궁금하다
어느 날 내비 속 그 여자가 변했다
막다른 곳에서도 직진하라 부추긴다
하루만 쉬게 해 달라 여자를 내비둬라
다음날 내비 속에서 들려온 남자 목소리
앞차도 옆차도 그 남자가 이끄는 대로
도로 위 바퀴 달린 것들 어제처럼 굴러간다

♧ 소화기
오래된 구석에서
안전핀 부여잡고
정년이 되고서야
녹이 슨 자릴 뜬다
소방차
한 대와 맞먹는
부동의
붉은 근위병
* 조한일 시집 『낮은말 받아쓰기』 (가히, 2025)에서
* 사진 그림 : 멕시코 모 식당에 걸려 있는 민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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