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삶은 밥이다 – 이화인
삶은 밥이다
사는 일이 밥 한 그릇 구하는 일
평생 밥 한 그릇 애써 걸식하기 위하여
너덜너덜 너덜겅 길
서릿발 지는 험한 길을 가는 일이다
호젓한 오솔길을 가고
위태위태 쪽다리를 건너는 일이다
사는 일이
먼 훗날, 그날이 오면
내 밥 다 먹고 돌아가는 일이다
밥 한 그릇 허술히 생각 마시라
남이 지은 눈물 밥에 눈독 들이지 마시라

♧ 목련화 – 임영희
앙상한 뼈마디마다
솜사탕인 듯
샛별구름인 듯
잔뜩
웅크리고 앉아 있더니
저기 좀 봐
수억 마리 학鶴이 되어
훨훨 날아가네

♧ 너 때문에 외롭진 않았다 - 임승진
울 강아지와
함께 산 지 어언 12년
이사를 떠난 마을의 빈집에
홀로 남겨진 아이 데리고 왔을 때
잇몸 허물어지고 탈모도 심해
얼마 못 살 줄 알았다
시골로 내려와
새로 맺어진 식구로 사는 동안
건강 되찾으면서 애교도 부리고
늘 곁에 있으면서 지켜 주더니
논둑길 따라 동네 한 바퀴
산책하는 시간이 얼마나 든든하던지...
겨울 들녘 헤매던
배고픈 떠돌이가 집으로 들어와
예쁜 식구 하나 더 늘었지만
먹이와 잠자리를 친구에게
순순히 양보해 주는 착한 심성에
사랑과 자비 또한 배우게 되었다
같이 늙어 가는 모습
맑은 눈 속에 비춰보면서
말은 못해도 서로 느껴지던
마음 나누며 외로움도 잊었는데
언제일지 모를 때 이른 눈물에
가슴 밑바닥까지 뜨거워진다

♧ 3월 – 이학균
겨울은
웅크린 그리움의 시간이었다
그대를 보고
나를 보는
봄을 품고
순백의 발자국으로 걸어온,
사진으로 기별 오는
봄빛에 눈물겨워
꽃이 피는 양지에
몸은 푼
핼쑥한 겨울은
파르르한 그리움 되었다.

♧ 첫사랑 – 이수미
오랜 친구를 만나러
미아사거리 가는 길
라일락 나무 두 그루가
이마를 맞대고 서 있다
내 몸을 통째로 뒤흔드는
알싸한 꽃 냄새
야릇한 감정에 나도 몰래
가슴이 방망이 친다
그가 벌써 와서
연보랏빛 내음을
흘린 것일까
* 월간 『우리詩』 2025년 4월호(통권 제443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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