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김수열 시집 '날혼'의 시(5)

by 김창집1 2025. 5. 24.

 

 

 밖거리

 

 

   친정에 간 며느리가 첫 몸을 풀면 금줄 걷는 때를 맞춰 시어머니는 아기구덕과 봇지옷, 떡과 음식을 장만하여 사돈댁으로 가고, 지극정성으로 만든 삼베 봇지 옷 입혀 둥게둥게 어르다가, 외하르방 닮았수다 성하르방 닮았수다 주고받다가 금자동아 은자동아 자랑자랑 웡이자랑 아기구덕 흔들어 어린 손지 재우고는 와랑와랑 집에 돌아와 안방문 활짝 연다

  “아이고 우리 손지, 코광 눈광 하르방 똑 닮아십디다

 

  손지가 등에 업힐 만큼 자라면 안사돈은 어린 외손지 이마에 콧등에 솥강알 숯검정을 검게 칠하고는 제 딸 품에 이것저것 바리바리 싸서 사돈댁으로 돌려보내는데, 올레 밖까지 나와 동동 기다리던 하르방 할망은 성손지 받아 안고 아이고 우리 손지, 솥 쓰고 허연 오랐구나게 하며 입바위가 덩싹 벌어지는데, 이쯤 되면 의젓한 며느리는 밖거리 주인으로 인정받고 새 살림을 차린다

 

 

 

 

넋들임

 

 

이른 새벽 탑 아래 불턱 옆에 제상 마련하고

정뜨르 넋할망을 불렀다

 

- 나이는 열 살

바당에서 해엄치당 물에 빠진 넋이우다

성은 김 가 이름은 아무가이

천지왕에 흩어진 넋

지부왕에 흩어진 넋

이허중감중에 흩어진 넋

하간 넋을 들이려 합네다

 

어머니가 미리 준비한 내 옷 들고

넋할망은 두 손 높이 올려 넋을 부르고는

내 머리 가마 위에 옷을 얹어 넋을 들인다

 

성은 김 씨 이름은 아무가이

-

성은 김 씨 이름은 아무가이

-

성은 김 씨 이름은 아무가이

-

 

두린 마음에 또박또박 대답하니

넋할망은 아이고 넋 돌아왔구나

하시며 어머니가 준비한 물을

내 입에 세 번 넣어주시고는

치마 고운 신칼 들고 주문을 외신다

 

어떤 것이 잡귈러냐

이 허중감중에 떠도는 것이 잡귀로다

늙어 죽은 노망귀냐 젊어 죽은 청춘귀냐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일에 죽은 잡귈러냐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일에 죽은 잡귈러냐

쑤어나라 쑤어나라

 

헛쉬이

헛쉬이

 

 


 

돗죽

 

 

섣달 그믈어 생기복덕 맞는 날

송당본항 금백조할망 일곱째 아들

궤내귓도 청신허여 돗제 올린다

손그믓 선명한 돌레떡 동그랗게 진설허고

검은 도새기 통째로 삶아 돗제 올린다

 

천 사람 입에 가면 천복

만 사람 입에 가면 만복

 

돗 삶은 국물에 김녕 바당

물숨 그차지명 호오이 호오이 건져 올린 ᄆᆞᆷ에

다락다락 미끄러지는 겉보리 넣고

궤내기굴 그늘막에 솥단지 걸어 부글부글 부글부글

돗죽 끓인다

 

천 사람 입에 가면 천복

만 사람 입에 가면 만복

 

궤내깃당 단골들 지물구덕 등에 지고

바람 가르며 모여들고 단골 좇아 며느리도 손자도

하나둘 모여들고, 바람막 아래서 돗죽을 나눈다

뜨뜻하고 베지근한 인정을 나눈다

모락모락 피어나는 옛정을 나눈다

 

천 사람 입에 가면 천복

만 사람 입에 가면 만복

    

 


 

파제가 있는 풍경

 

 

본향집 식겟날 자시 파제 기다리면서

삼방에 누워 먹다가 졸다가 졸다가 먹다가

모도리적에 얹혔는지 약밥에 체했는지

낯빛 파래지고 끙끙 배앓이를 했다

 

우리 손지, 이래 왕 누우라보저

 

풍년초 둘둘 말아 입에 문 작은할아버지가

덩드령마께 같은 손바닥을 어린 배 위에 올려놓고

 

삼신하르방 손이우다 체 내리와줍서

삼신하르방 손이우다 체 내리와줍서

 

지그시 눌러 스윽스윽 손을 놀리면

배앓이 하던 어린것은 언제 그랬냐는 듯

할아버지 품에서 까무룩 잠이 들곤 했다

 

 


 

마누라

 

 

자식 농산 잘해야 반타작

열 아기 나면 다섯 아긴 먼저 보낼 수밖에

약도 없고 병원도 없고 먹을 것도 없고

 

아기 몸에 마누라 들면

어명 아방은 부랴부랴 낭밭에 올라

산뽕낭 파먹고 사는 잣*, 그걸 잡으러 가는 거라

굼벵이 닮은 거지

그걸 탁, 잡아서 몸통이 곱게 나오면

아이고, 우리 아긴 살로고나허고

그게 중간에 톡, 끊어지면

, 우리 아긴 안 될로고나허였주

 

잣을 잡고 집에 오면 꼬리 자르고

사발에 대고 몸통을 꼭, 눌러

그러면 하안 게 찍, 나와

그걸 먹이는 거라, 아기에게

꼭 어명 젖 닮아

 

하이구! 이 웃드르에 병원이랑마랑

왜정시대 공출 지나 토벌대들 거명허게

몰려들어 집들 다 불태우던 시절에, 병워언?

 

무신 거? 마누라? 각시?

야이, 무신 소리 햄시?

역병게 역병!

 

 

---

* : 사슴벌레 유충.

 

 

 

                           *김수열 시집 날혼(삶창시선, 2025)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