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밖거리
친정에 간 며느리가 첫 몸을 풀면 금줄 걷는 때를 맞춰 시어머니는 아기구덕과 봇지옷, 떡과 음식을 장만하여 사돈댁으로 가고, 지극정성으로 만든 삼베 봇지 옷 입혀 둥게둥게 어르다가, 외하르방 닮았수다 성하르방 닮았수다 주고받다가 금자동아 은자동아 자랑자랑 웡이자랑 아기구덕 흔들어 어린 손지 재우고는 와랑와랑 집에 돌아와 안방문 활짝 연다
“아이고 우리 손지, 코광 눈광 하르방 똑 닮아십디다”
손지가 등에 업힐 만큼 자라면 안사돈은 어린 외손지 이마에 콧등에 솥강알 숯검정을 검게 칠하고는 제 딸 품에 이것저것 바리바리 싸서 사돈댁으로 돌려보내는데, 올레 밖까지 나와 동동 기다리던 하르방 할망은 성손지 받아 안고 “아이고 우리 손지, 솥 쓰고 허연 오랐구나게” 하며 입바위가 덩싹 벌어지는데, 이쯤 되면 의젓한 며느리는 밖거리 주인으로 인정받고 새 살림을 차린다

♧ 넋들임
이른 새벽 탑 아래 불턱 옆에 제상 마련하고
정뜨르 넋할망을 불렀다
에- 나이는 열 살
바당에서 해엄치당 물에 빠진 넋이우다
성은 김 가 이름은 아무가이
천지왕에 흩어진 넋
지부왕에 흩어진 넋
이허중감중에 흩어진 넋
하간 넋을 들이려 합네다
어머니가 미리 준비한 내 옷 들고
넋할망은 두 손 높이 올려 넋을 부르고는
내 머리 가마 위에 옷을 얹어 넋을 들인다
성은 김 씨 이름은 아무가이
-예
성은 김 씨 이름은 아무가이
-예
성은 김 씨 이름은 아무가이
-예
두린 마음에 또박또박 대답하니
넋할망은 아이고 넋 돌아왔구나
하시며 어머니가 준비한 물을
내 입에 세 번 넣어주시고는
치마 고운 신칼 들고 주문을 외신다
어떤 것이 잡귈러냐
이 허중감중에 떠도는 것이 잡귀로다
늙어 죽은 노망귀냐 젊어 죽은 청춘귀냐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일에 죽은 잡귈러냐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일에 죽은 잡귈러냐
쑤어나라 쑤어나라
헛쉬이
헛쉬이

♧ 돗죽
섣달 그믈어 생기복덕 맞는 날
송당본항 금백조할망 일곱째 아들
궤내귓도 청신허여 돗제 올린다
손그믓 선명한 돌레떡 동그랗게 진설허고
검은 도새기 통째로 삶아 돗제 올린다
천 사람 입에 가면 천복
만 사람 입에 가면 만복
돗 삶은 국물에 김녕 바당
물숨 그차지명 호오이 호오이 건져 올린 ᄆᆞᆷ에
다락다락 미끄러지는 겉보리 넣고
궤내기굴 그늘막에 솥단지 걸어 부글부글 부글부글
돗죽 끓인다
천 사람 입에 가면 천복
만 사람 입에 가면 만복
궤내깃당 단골들 지물구덕 등에 지고
바람 가르며 모여들고 단골 좇아 며느리도 손자도
하나둘 모여들고, 바람막 아래서 돗죽을 나눈다
뜨뜻하고 베지근한 인정을 나눈다
모락모락 피어나는 옛정을 나눈다
천 사람 입에 가면 천복
만 사람 입에 가면 만복

♧ 파제가 있는 풍경
본향집 식겟날 자시 파제 기다리면서
삼방에 누워 먹다가 졸다가 졸다가 먹다가
모도리적에 얹혔는지 약밥에 체했는지
낯빛 파래지고 끙끙 배앓이를 했다
우리 손지, 이래 왕 누우라보저
풍년초 둘둘 말아 입에 문 작은할아버지가
덩드령마께 같은 손바닥을 어린 배 위에 올려놓고
삼신하르방 손이우다 체 내리와줍서
삼신하르방 손이우다 체 내리와줍서
지그시 눌러 스윽스윽 손을 놀리면
배앓이 하던 어린것은 언제 그랬냐는 듯
할아버지 품에서 까무룩 잠이 들곤 했다

♧ 마누라
자식 농산 잘해야 반타작
열 아기 나면 다섯 아긴 먼저 보낼 수밖에
약도 없고 병원도 없고 먹을 것도 없고
아기 몸에 마누라 들면
어명 아방은 부랴부랴 낭밭에 올라
산뽕낭 파먹고 사는 잣*, 그걸 잡으러 가는 거라
굼벵이 닮은 거지
그걸 탁, 잡아서 몸통이 곱게 나오면
‘아이고, 우리 아긴 살로고나’ 허고
그게 중간에 톡, 끊어지면
‘하, 우리 아긴 안 될로고나’ 허였주
잣을 잡고 집에 오면 꼬리 자르고
사발에 대고 몸통을 꼭, 눌러
그러면 하안 게 찍, 나와
그걸 먹이는 거라, 아기에게
꼭 어명 젖 닮아
하이구! 이 웃드르에 병원이랑마랑
왜정시대 공출 지나 토벌대들 거명허게
몰려들어 집들 다 불태우던 시절에, 병워언?
무신 거? 마누라? 각시?
야이, 무신 소리 햄시?
역병게 역병!
---
* 잣 : 사슴벌레 유충.
*김수열 시집 『날혼』 (삶창시선, 2025)에서

'아름다운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월간 '우리詩' 5월호의 시(4) (0) | 2025.05.26 |
|---|---|
| 월간 '우리詩' 5월호의 시(3) (1) | 2025.05.25 |
| 김항신 디카시집 '길을 묻다'의 시(8) (0) | 2025.05.23 |
| 월간 '우리詩' 5월호의 시(2) (2) | 2025.05.22 |
| 제주4․3 '77주년 추념시집'의 시(1) (6) | 2025.05.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