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비니 – 서안나
나는 법칙 안에 있습니다 질서는 추워요
지하 원룸에는 눈이 자주 내립니다
옆구리를 긁으면 배고픈 부처가 이끼처럼 돋아납니다
노래를 부르면 하안 입김이 나와요
하얗게 말해볼까요, 얼굴에 흰 칠을 하고
나는 배터리가 자주 나갑니다
전기장판은 가끔 틉니다
나는 이미 북극입니다
방에 창문이 있다면 아름다운 꽃집을 바라볼 수도 있겠지요
활명수를 마시고 수요일에는 구원을 생각합니다
구하면 얻을 수 있을까요
영혼은 지도가 없어 쉽게 도착하지 못합니다
이력서를 찢는다는 게 포기한다는 건 아닙니다
무엇보다 어머니에게 죄를 짓는 기분입니다
비니를 쓰고 음악을 들으며
누군가 나를 안아주는 기분이 됩니다
나의 실패한 천국에는 온기가 돕니다
귀가 보살입니다
나의 가난도 후덕해집니다
비니를 쓰면 집 앞을 깨끗하게 쓸고 싶어집니다
고립은 본질적으로 아름답습니다
나는 단종 임금처럼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대지와 이산화탄소와 백 년 전 프랑스 유령을 끌고
북극을 걸어 나가는 보법을 연습합니다
나는 비니를 쓰고 씨앗처럼 둥글어집니다
내 손을 귀에 대면 초록 잎사귀 냄새가 납니다
내부를 나는 흠모합니다

♧ 우수한 날의 - 김항신
우수가 우수에 젖던 날
수양버들 우수에 젖어
방긋하게
님 마중 오듯
내 마음 덩달아
우수에 젖어
마음 갈피 헤매는
임 마중 아닐지언정
조물주 남긴
젖니 머물던 자리
서까래 받치듯
축대 세워
밥심으로 살아볼까
하던 차에
저 흰 갈매 새들마저
우수에 젖어
갈피에 젖어
삶의 굴레 돌아보듯
‘나’를 돌아보듯

♧ 우치(愚癡) 1 - 문태준
-뱀허물을 보고
부추를 베러 남새밭에 들어가다 뱀이 벗어놓은 허물을 보고 뒤로 크게 나자빠졌다 한참 얼이 나가 있다 바지에 묻은 흙을 털고 일어서며 이까짓 것 알게 뭐야, 라고 중얼거렸다 뱀허물에 세 군데 굽이가 져 있는 게 눈에 띄었다 뒷걸음질치다 생각건대 어젯밤 꿈에 뱀이 옷 안으로 들어와 내 살갗을 스치는 순간 계절이 돌차간 바뀌어 지나가는 것에 화들짝 놀라 깨었던 일이 있었다 나무 꼬챙이로 뱀의 허물을 들어 올려 풀이 뒤엉켜 우거진 곳으로 가 땅속에 묻어주었으나 뱀의 허물 문양 천장화가 있는 시간의 가건물 속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닌지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 키오스크 – 안시표
혀끝의 돌기와 공기의 촉감은
여기선 빨간 침묵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선 공간의 만남은
설레이다를 꿈꾸는 비표준어
소란은 난무하는 두근거림으로
카페 안을 가득 채우고, 나는
카운터 공간 구석진 네 심장을 찾는다
마침내 너를 터치하다 되돌아오기를 여러 번
반복하는 친밀한 검지는
피사체에 놓여있는 소리의 여백에 스와이프
화면 번지는 미소는 속마음을 알려주는 환한 수줍은 핀치
강렬한 배경에 다양한 낱개의 겉피를 벗겨내는 스프레드는 붉은 속살
심장으로부터 나의 검지까지 이어주는 푸른 혈맥을 찾아
혼란의 터치, 스크린을 헤매인다
약간의 머뭇거림에 마주선 만남은
이내 집중과 선택의 고뇌 속으로
내가 바라던 구도가 시재 되었을 적
나는 너를 빠져나와
기다림의 질서로 돌아간다

♧ 남양여인숙 4 - 문무병
-90년대 <이제사 말햄수다>로 해원상생의 굿판을 열다
89년 4․3연구소 개원했고,
<이제사 말햄수다> 1, 2권을 출간하였다.
여기에 산파 역할을 한 사람이 나 문무병이었다.
그 당시 서울에는 현기영 형님을 중심으로 <제사협>이 있었고,
제사협은 나름대로 제주의 역사,
4․3 연구를 위한 물밑 작업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서울에 있는 현기영 형님을 소장으로 모시고,
제주에 민예총지회장으로 있는 내가 사무국장을 맡기로 하고
내가 여러 번 서울 나들이를 하며, 4․3연구소가 탄생하였다.
연구소의 출생은 그렇지만 제주 4․3항쟁의 증언 채록 작업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현기영 소설 <순이 삼촌>이나 김석범의 소설 <화산도>,
김봉현의 <4․3 피의 역사>와 같은 기존의 자료연구가 아니라
감히 조사를 시작할 엄두를 낼 수 없었던 상황에서
4․3 증언조사의 시작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나는 그 당시 학위논물 준비로 5촌 당숙의 지원을 받아
마을의 신당 조사를 하고 있었다.
나는 조사 갈 때마다 4․3 연구소 후배들을 함께 데리고 가
곁다리로 현대사(4․3증언)의 흐름을 물어보면서 조심스럽게
조사의 중심을 4․3으로 옮겨갔었다.
4․3연구소는 아무런 도움도 없이 어려운 상황에서
게릴라처럼 현장에 뛰어들어 증언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때 현장조사를 앞장서서 실행한 사람이
문무병, 김창후, 양성자, 홍만기, 김기삼 들이었다.
채록비용은 신당조사 비용으로 충당하였다.
그러니까 신당 조사를 갔다가 4․3 채록까지 했던 셈이다.
그 결과로 <이제사 말햄수다> 1, 2권이 한울출판사에서 간행되었으며,
이것이 4․3 연구의 출발점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한 중요한 사업은
90년대 말, 1998년 4․3 50주년 되는 해에
현대적 의미의 역사맞이굿으로 4․3 해원상생굿을 완성했다는 것이
4․3과 나의 연결고리다.
90년대는 그렇게 4․3의 싸움굿으로 문화의 시대를 열었던 것이다.
굿에서 신의 ‘내력담(來歷談)’ 또는 ‘생애 이야기’라 할 수 있는
‘본풀이’를 노래할 때, 심방은 본풀이에 들어가는 굿 사설에서
‘귀신의 본을 풀면 신나락 만나락 한다’고 한다.
이 사설의 의미는 ‘풀이’ 즉 역사적 해원을 통한 ‘신바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망자가 왜 죽었고, 어째서 억울한 죽음인가를 밝히는 과정에서
망자는 억울함을 풀고, 맺힌 한 때문에 이승을 떠날 수 없었던
‘부정’을 털어버리고 저승으로 갈 수 있게 된다.
‘역사를 역사화 한다’는 것은 과거 속에 파묻히지 않고
과거를 통하여 현재를 설명하는 것이다.
4․3에서 죽은 평민 무명의 용사들의 죽음은
‘난리에 죽은 억울한 죽음’이다.
이들이 여울한 죽음을 신원하는 일,
이것은 사라진 역사를 복원하는 일이며,
‘억울한 죽음’을 ‘의로운 죽음’으로 신원하는 것이다.
따라서 해원의 의미는 바람을 잠재우듯이 억울한 죽음을 정당화 해주고
‘의로운 죽음’으로 자리매김하여 위령하고
영혼을 저승상마을로 보내는 의식이다.
이러한 굿을 역사적 해원․상생굿이라 한다.
상생이란 저승으로 가는 죽은 자와
이승에 남은 산 자가 더불어 산다는 의미이다.
이승에 미련을 남기면 저승으로 갈 수 없다.
망자의 부정은 이승에 남겨 둔 한(恨)이다.
한을 풀어 주는 자는 이승에 남아 있는 산 자의 몫이다.
산 자가 망자의 한을 풀어 주고 저승으로 보내는 해원(解寃)은
상생(相生)을 위한 것이므로
해원과 상생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서로 다르면서 궁극적으로는 불이(不二)이다.
죽어서 억울한 조상과 살아서 부끄러운 자손이
죽어서 억울한 죽음을 ‘의로운 죽음’이 되게 하고,
자손은 역사 앞에 부끄러움이 없게 하는
죽은 자와 산 자가 모두 역사 앞에 떳떳하고
산 자는 산 자끼리 더불어 하나 되게 하는 것이 ‘상생굿’이다.
<시왕맞이>에서 신과 인간, 망자와 산 자의 대화를
‘영개울림’이라 한다.
‘영개울림’은 ‘죽은 영혼의 울음’이며
죽은 자에게 죽어서 억울한 심정을 이야기할 수 있게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망자는 울 수 있는 기회를 얻어 생전, 또는 죽는 순간의 못 다한 말들을
다 풀어놓음으로써 맺힌 것을 풀고,
미련을 버리고 가법게 저승으로 떠난다.
우리는 마당굿 형식을 통하여
4․3에 죽은 억울한 원혼들의 울음을 통하여 버려진 역사,
버림받은 역사의 현장을 고발해 왔다.
그것은 ‘역사의 역사화’였다.
‘영개울림’은 산 자와 죽은 자의 대화이며,
잊혀진 역사를 재구하는 한풀이 다시 말하면 역사적 해원이었다.
*계간 『제주작가』 2025년 봄호(통권 제88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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