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시인의 말
‘살다보면 알게 돼
비운다는 의미를
내가 가진 것들이
모두 꿈이었다는 것을’
감귤나무 전정을 하며
나훈아의 노래 ‘공’을 듣는다
2025년 봄날
문순자

♧ 척후꽃
꽃송이도 벌처럼 정찰을 하는 걸까
마당 한 켠 철쭉 화분에 교대하듯 한 두 송이
이 봄날 나의 비의를 염탐하는 것만 같다

♧ 성소를 훔쳐 보다
노랑턱멧새인가
곤줄박이 녀석인가
가끔은 농약도 치는 감귤나무 가지에
손녀딸 밥사발만 한 새집 하나 생겼다
몇 번의 날갯짓이 둥지를 완성 했을까
이끼와 지푸라기 솜털로 차린 신방
저들의 성소를 엿보는
내 몸이 저릿하다
삐이삐 찌르찌르
밥 한술도 못 줬는데
그럼에도 탈 없이 부화를 끝냈는지
올여름 가마솥더위 달구는 저 새소리

♧ 씨앗의 힘
서울 사는 둘째가 카톡카톡 날 부른다
전시회에 왔다며 보내온 사진 한장
“이건 뭐?”
내가 되묻자 그만 울먹거린다
오래된 주문처럼 여섯 개의 유리병엔
홍두 메밀 흑보리 자색보리 갓 참깨
코르크 마개도 못 막은
돌아가신 할머니 냄새
만지면 손가락 사이로 스르르 빠져 나가는
좀팍과 푸는체로 까불리던 갯노멀 씨앗
그날 그 감촉이 그만
뇌관을 건드린 거다

♧ 귀선이
말끝마다 그쟈 그쟈?
곱슬머리 대구집 딸
쌀 사러 갈 때에도 살 팔러 간다던 그녀
한세상 살만 축내다
우린 간다 그쟈 그쟈?
*문순자 시조집 『가끔 집으로 돌아가 울고 싶을 때가 있다』 (도서출판 작가, 2025)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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