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시인의 말
까마득한 길이
어제처럼만 같다.
걸음걸음 인도하신 이
마지막 한걸음도
헤이실 것을 믿는다.

*노을 빚기
노을이
저리 곱다 하오시니
내 노을 한 채
빚으렵니다.
쌓아도, 쌓아도
닿지 않는 하늘
고이고, 받치고
한 땀 한 땀 다듬어서
채색 옷도 곱게
내 노을 한 채
빚어드리리라 합니다.
2025년 봄
김종호

♧ 벽 앞에서
소리치는 벽 앞에서
고요할 때
벽은 벽이 아니었다
어둠의 캄캄한 속에서
눈을 감고 바라보니
절망은 종다리의 알을 품고 있었다
성은 무너지고
새들은 날아가고
바라볼 하늘이 없을 때
울부짖는 자여,
강고한 너를
허물 수 있다면
무덤으로 걸어 들어가서
생명의 길을 여신 예수
절대 사랑을 만나게 되리니

♧ 여섯 개의 벽 1
육면의 독방에
누워서, 너는
영원한 수인
천장만은
유일한 해방구
그리움으로 날아가서
네 사랑 손잡고 울다가
새벽이 되어 돌아온다
네 감옥에
사면(赦免)의 문이 있다
열면 열리고
열지 않으면
그 문은 견고하다

♧ 제7의 벽
오늘도
바위를 굴리는 자여
네 바위는
무의미인가
반항인가
제7의 벽
원죄에 매인 자여
부조리와 불안을
떠도는 디아스포라여
바위를 굴려라
네 안의
사면의 바다로

♧ 투명한 벽 2
모든 사이에는
허공이 있다
아름다운 노래로 날아가서
젖어서 돌아오는 슬픈 새
등을 대고 앉아
심장 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외롭다
사랑, 이 아픈 역설
마트에서 1+1을 얼른 집어 들고
고요한 시간에 얼굴을 붉힌다
근엄하게 감추어야 하는
나는 외롭다
자기배반, 이 슬픈 역설
너와 나 사이
흐르지 않는
허공이 있다
*김종호 시집 『강나루의 대화』(푸른 생각, 2025)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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