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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조한일 시집 '낮은말 받아쓰기'의 시(4)

by 김창집1 2025. 6. 1.

 

 

넌 나의 왼쪽이다

 

 

양말 벗고 엄지발가락 서로 갖다 대던 밤

알았다, 두 발톱이 다른 삶 살아온 걸

왼쪽은 아픔을 품고

오른쪽은 평온하다

 

왼발을 내디디면 오른발이 따라오고

그 반대의 삶 또한 절반은 되었는데

왼쪽이 안쓰러워서

자꾸만 손이 간다

 

똑같이 생겨났다고 닮아가는 건 아니었다

대칭으로 산다는 그 궤적은 거짓이며

상처로 자가 치유하는

넌 나의 왼쪽이다

 

 


 

너를 달아보다

 

 

한 움큼 올려놓은 동네 정육점 저울에선

무게감 하나 없이 초원을 누벼 왔던

중년의 소 등심 계체량 한 치의 오차 없다

 

피할 수 있었더냐 살다가 측정되는 일

누구보단 잘났고 누구보단 못났다고

일상은 들이대는 잣대에 움찔하며 사는 것

 

눈금과 눈금 사이 핏방울 눈물방울로

되레 영롱한 삶이었단 감식 결과 관계없이

무죄야 내가 증인이다 년 무죄란 말이야

 

 

 

 

노출수위

 

 

꼭 잠가야 한다는 의무감은 뒷전이고

정규직 현관 도어록 뜻밖의 파업 선언

무반응 지동 잠금장치 저항이란 그 이름

 

아직 익숙지 않은 수동으로 사는 일

며칠을 깜빡해서 닫기만 하고 잠들었다

더 이상 자동으로 나를 잠그지 못한 채로

 

손을 써야 살아남는 그럴 때 온 것이다

습관처럼 닫고는 열린 줄도 모르고

내 속을 다 보여줄 뻔한 그런 일을 하다니

 

 


 

버드 스트라이크

 

 

시골길 운전하다 새와 눈이 마주쳤다

 

삶의 난간 위 떨리는 그런 눈빛 아니었다

 

단연코 순식간의 일

사고로 정의 내릴

 

조류계 최상류층 송골매의 저공비행

 

차 앞 유리와 정면충돌 로또 확률 버드 스트라이크

 

새똥만 증거로 남은 현장

와이퍼가 지나갔다

 

방심해서 몸 낮췄다가 호되게 당하는 일

먹 엇감에 정신 팔려 제 앞을 못 보는 일

 

하늘 위 버드 스트라이크

지상에도 있다니

 

우리도 난데없이 부딪치며 살긴 하지

지나친 바라봄이 눈멀게 하고 마는

 

단 한 뼘 간격도 없는

오만한 정 때문에

 

 

*착한 사마리아인(고흐)


 

착한 사마리아인의 궤적

 

 

살면서 남의 앞길 막아 본 적 있는가

들이박듯 멈춰 세운 찰나의 선택으로

폭주를 단칼에 끝낸 머리보다 빠른 몸짓

 

구멍 난 둑 손가락으로 틀어막아 마을 구한

네덜란드 소년 얘기, 허구지만 괜찮아

뻥 터져 물벼락 덮친 이 땅에도 허구는 많아

 

방관이란 습성이 모난 들들 깎고 있는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들이 덮친 도로

앞뒤를 재지도 않고 비정상을 없앴다

 

살판난 불의 길에 물불도 안 가리고

누군가 크게 다칠 불씨는 끄고 보자

남 앞길 삽시에 몸 던져 가로막은 그 궤적

 

 

         *조한일 시집 낮은말 받아쓰기(가히, 2025)에서

 

 

*착한 사마리아인(들라크루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