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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김영란 시집 '동백 졌다 하지 마라'의 시(5)

by 김창집1 2025. 6. 2.

*영화 영상 캡쳐

 

 

돌들이 말할 때까지*

 

 

  기다렸던 것일까

  돌이 입을 열 때까지

 

  구순의 다섯 할머니 표정 없이 내뱉는 말 눈물도 앗아가 버린 먹먹한 돌의 외침 흐르지도 흘리지도 않는 농축액 같은 슬픔아 전쟁도 그런 전쟁 엇어서 기억 속 그녀의 사월아 그 시상 다시 온뎅 허민 죽어불고 말키여 섬에는 유난히 바람이 많아서 좌로 한 번 우로 한 번 상하로 또 한 번

 

  한동안 무소속 바람 수시로 불어 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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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만 감독의 43다큐.

 

 

*주정공장 4.3기념관 마당


 

별도봉別刀峰

 

 

휘파람새가 울었어

 

바닷가 절벽에서

 

오래된 슬픔들이

 

하염없이 서성였지

 

가슴을 칼로 벤 듯이

 

이별은 늘 아프지

 

 

*주정공장 4.3기념관 '전시그림'에서


  

어떤 이별

 

  시퍼런 초사흘 달 쪽창에 걸려 있다

 

  생의 마지막 날 빈 젖 빠는 어린 것 어둔 밤 호명소리에 파르르 감전된다 명줄 고작 백 일이냐 불쌍한 내 아가 어미 살점 떼어주랴 어미 피를 짜서 주랴 떠나는 마지막 길에 눈 온다, 함박눈. 아가야 눈을 떠봐라 산지항에 눈 내린다 꽃상여 아니면 어때 처음 타보는 배로구나 널 그냥 풀섶에라도 두고 을 걸 그랬어 배 밑창에 짐짝처럼 포개 앉은 사람들 저승으로 가는 길 오장육부 비워내듯 서러운 오물덩어리 굽이굽이 열두 구비 저승인 듯 이승인 듯 서글픈 뱃고동 네 아비 우릴 찾아 여기까지 찾아온 듯 산지항 뱃고동 소릴 여기서 듣는구나 곰삭은 사투리로 비릿비릿 내리는 눈, 아가야 저승이 아니란다 눈을 떠봐라 아가야! , , ! 아가야! 슬픔의 정점에선 눈물 나지 않았네 홑포대기 덜렁 두른 어린 것 하나를 눈 녹아 질퍽거리는 목포항에 묻었다 봄 여름 가을 가고 눈 내리면

 

  살처분 짐승새끼가 자꾸 나를 부른다

 

 


 

술 한 잔

   

더듬어 찾아간 날 벌써 날은 저물어

핏발이 스며든 땅에 이슬로 졌을지 모를

아직도 헤매고 있을 그대 이름 불렀지

 

안동 이식골 남평문씨 종갓집 막내아들

인간의 법정에선 대한민국 첫 사형수

하늘의 법정에서는

무죄판결 받았는지

 

수색 동방 5

이름 없는 붉은 산기슭

오래 전 신문기사 기대어 찾아간

경기도 망월산 뒤편 수작골은 아직 붉어

 

조국과 동포를 부르짖으며 죽어간

스물셋 그 영혼이 아직도 헤맬 것 같아

향 살라 무릎 꿇고서 올려 드린 술 한 잔

 

 


 

주남마을 버스 정류장

 

 

  마흔두 해가 지나고 주남마을 행 버스 탄다

 

  서로의 슬픔을 우산으로 가리고 시멘트 포장길 따라 파고드는 시간 속, 어미를 잃었을까 노랑부리백로 한 마리 날갯짓도 잊었는지 휘청거리다 사라지고 위령비 푯말 따라 후다닥 떠가는 바람 광주에서 화순으로 이어진 길목에 가도 오도 못하고 갇혀 버린 버스 한 대 유리창을 부수고 쏟아지는 총알들 할아버지 제사를 모시러 간 여공은 주남마을 어귀를 떠돌고 있을까 벽에는 어느새 어둠이 번지고 슬픈 눈을 가진 열여덟 마리 노루들과 고요하고 거룩하게 마주하는 저녁

 

  아직도 주남마을 정류장엔 빗물이 고인다

 

 


 

노란 꽃*

   -아프가니스탄의 눈물

 

 

  세상의 빛들이 눈앞에서 사라지네

  짓밟힌 꽃들의 비명 가시철망에 걸리고 생명 자유 평등 사랑 그 찬란한 조국아 찢어진 날개 하나가 피 흘리며 떨고 있네 아무도 기억하지 않은, 아무도 약속하지 않은 불안한 하루하루가 흔적 없이 지워지네 노랗게 부푼 꿈이 부르카에 갇히네 그물 밖 세상을 향해 나는 나를 꿈꿔보네

 

  끝끝내 살아남기를

  태양처럼 꽃 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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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칸 예술가 사라 라마니의 아프칸 소녀의 초상화제목.

 

 

                  *김영란 시집 동백꽃 졌다 하지 마라(한그루, 2025)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