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불알시계
시간 몰라 난처한 때는 제삿날이었다
설상(設床)이야 그럭저럭 해 그물어 차리면 그만이지만
문제는 파제(罷祭)였다
지들커로 화식하던 시절이라
때가 되면 메 앉히고 갱을 데워야 한다
작은 방에 설상을 하고
상주며 궨당들은 소반 받아 음복을 하고
기다림에 지친 어린 것들은 소랑소랑 삼방에 잠이 들고
제상을 지키던 아버지는
잔부름씨하다 꼬닥꼬닥 조는 어린 것을 깨우고는
‘밖에 나강 보라, 북두성 꼴랭이가 어디 시니?’
마당에 나은 어 린 것은 덜 깬 눈으로 하늘을 보다가
‘예, 동펜이 울담 먹구슬당에 거러졌수다’
아버지는 헛기침으로 주변을 깨우고는
정지에 대고 낮고 길게 한 마디 하셨다
‘어어이’
그로부터 몇 해가 지났을까
‘아무개 조합장 기증’ 불알시계가 떡 하니 걸려
또깍또깍 꺼떡꺼떡 하면서부터
어린것에겐 별 볼 일 대신 다른 볼 일이 생겼는데
새벽 밭 나서기 전, 아버지는 잠결에 대고 한 말씀하셨다
‘시계 밥 주는 거 잊어불지 말라’

♧ 당일 식게
대소상 3년 시묘는 호랑이 담배 필 적 얘기고
화장 단지 받아 막제 올리면 그만인데
섭섭하다 싶으면 사십구재 탈상이다
아버지 기일에 맞춰 어머니도 합제 하고
지방 안 쓰고 사진 올린 지는 이미 오래다
자시(子時) 행제 하려면 상주는 물론이고
제주 들고 문상 온 친족들도 부담이라
오래전 축 고해 당일제로 돌렸다
삼색 나물에 오색 과일 진설하고
촛불 켜고 향 피우면 적당한 저녁 시간
문상 온 친족들과 둘러 앉아 곤밥에 궤기국 먹고
술 한 잔 권하면 차 가져 왔다 손사래 치고
문전제 하지 않으니 조왕고사도 없다
삼헌관 없으니 종헌관이 집사를 겸하고
숭늉 올려 파제 하면 그만이다
냉장고에 남는 게 제사 음식이라며
주는 떡반 손사래 치고 훠이훠이 돌아간다
이웃 식겟집에 떡구덕 들고 갔던 어머니가 자시 즈음
와랑와랑 집으로 달려 와 자는 어린 것 두드려 깨우고
억지로 끌고 가서 곤밥에 궤기국 먹이고
침떡 곤떡 쪼가리에 궤기적 모도리적 하나씩
반 받아 챙기고 졸음에 겨운 눈 비비며
타박타박 집으로 오던 아이가 있었다

♧ 일포(日哺)
머귀나무 작대기로 상장(喪杖) 짚은 상제가
지관(地官) 데리고 장지(葬地) 둘러 돌아오면
신시(申時)에 맞춰 일포제 감으로 낳은
시집간 딸들이 부랴부랴 장만해 온
제물 진설하여 제를 올린다
어이 어이 어이 곡소리가 끝나면
두건 쓴 친척들이며 상제의 벗들은
명석 위에 모여 밤샘을 한다
장기를 두거나 화투를 돌리거나 종지윷을 던지며
떠들썩하게 밤을 지샌다
이승을 떠나기 전 망자와 함께
마지막 밤을 흥성스럽게 보내는 것이다
이럴 때면 시집간 딸상제들은
어김없이 돗배설국에 빙떡을 장만하여
밤새도록 술상을 내왔다
사돈댁에서 허벅에 담아 부조로 지고 온
붉은 팥죽도 내오라, 상제 친구들은 소리치지만
관 만드는 날 가져온 팥죽은 동이 난지 오래다
내일 아침 화단 나갈 때를 대비하여
머리에 수건 쓴 여자 친족들이 사기요강이며
사기그릇을 상갓집 이문간에 잘 보관해 두었다
내일 아침 화단 행렬이 집을 나가면
그것들은 파싹파작 벌러질 것이다

♧ 납일(臘日)
어른들은 제 지내러 향사에 가고
어린것들은 어머니가 정지에서 엿 고는 걸
늬치름* 질질 콧물 줄줄 흘리며 지켜본다
흐린좁쌀밥 보따리에 싸 물 섞어 문대기면
노리끼리 좁쌀 물 우러나오고 거기에 보리골** 섞어
가마솥에 넣어 나무 주걱으로 살살 저어 끓이면
특별한 날 제상에 올라가는 감주가 되고
그걸 밤새낭 끓여주면 끈적끈적 엿이 된다
닭 넣으면 닭엿
꿩 넣으면 꿩엿
싸락싸락 눈발 내리면 형들은 참새를 잡는다
눈 살짝 깔린 마당에 좁쌀 뿌리고
체에 자그마한 작대기 세워 비스듬히 눕히고
작대기엔 실 묶어 안방으로 연결하고
형들은 방 안에서 창호지에 붙은 손바닥만 한 유리
군침 꼴깍 뚫어져라 마당을 본다
조조조조 좁쌀 먹으러 참새들이 체 안으로 모여들고
이때다! 실을 확! 당기면 작대기 핑 ! 튕겨나가고
체, 탁! 엎어지면서 참새가 잡힌다 조조조조
털 벗기고 화롯불에 올려 오독오독 구워 먹는데
싸락싸락 눈발이 흩뿌린다
납일 전 세 번 눈이 와야 이듬해 풍년 든다는데
싸락싸락 눈발이 흩뿌린다
---
* 침
** 보리로 만든 엿기름.

♧ 먼 물질
놈의네 배는 구상낭 배요
우리네 배는 쑥대낭 배라
이어차라 이어차라
테우 상자리에 물항을 싣고 양식거리도 싣고
먼 물질 간다 먼 물질 간다
뭉게 닮은 서방 두고 먼 물질 간다
올망졸망 어린 것덜 뒤로허고 먼 물질 간다
돈아 돈아 말 모른 돈아
돈아 돈아 곱 어신 돈아
먼 물질 글라 먼 물질 글라 테우 타고 먼 물질 글라
영도다리 지나 울릉도 독도 먼 물질 간다
원산 청진 멀리 두고 울라디* 바당 먼 물질 간다
달이 진다 먼 물질 글라 해 떠온다 먼 물질 글라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
상자리에 돛 달아라 왕골돛을 달아라
네 저어라 네 저어라
왼팔 그차지면 오른팔로 네를 젓고
오른팔 그차지면 왼팔로 네를 저어라
이어싸 이어싸 네 저어라
배똥 알을 놈을 준덜
요네착이사 놈을 주랴
이어차라 이어차라
---
*블라디보스토크
*김수열 시집 『날혼』 (삶창시선, 2025)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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