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별천지
산이 깊어 그런지 별이 별을 부른다
자정을 훌쩍 넘긴 내설악 어느 절 마당
낮에 본 불사리탑이 별처럼 반짝인다
불상 하나도 없는 대웅전 들어서면
유리창 그까짓 것 장애물도 아니란 듯
창 너머 불사리탑이 여기까지 따라온다
새벽 다섯 시면 하산을 한다는데
봉정암 부처님과 뜬눈으로 지샌 별들
벗어 둔 등산화에도 독경소리 넘쳐난다

♧ 초이렛달
약속 시간 늦을라 급히 집을 나서는데
저건 새로 바꾼 시원이의 드림렌즈?
한순간 빨려 들듯이
내 눈에 쏙 박힌다
밤새 끼고 자면 안경 안 써도 된다는
그러니까 저 달도 고도근시였구나
이제 막 사춘기에 든
열두 살 손녀딸처럼
낮과 밤 그 언저리 세대를 건너뛴 자리
눈높이 하나로도 세상이 환해지는
가을도 네겐 봄이다
아무나 꿈꿀 수 없는

♧ 성북천
느닷없는 한파에 파도도 얼어붙었다
서울은 어떠냐고 휴대폰 꺼내든다
딸아이 거친 숨소리,
성북천을 달린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몸도 뜨거워진다
삼선교에서 청계천까지 왕복 7킬로미터
사십 분 달리고 나면
외려 살 것 같다는
팬데믹 세상 너머 젊음의 해방구처럼
빈쯤 언 물속에서 사냥하는 쇠백로처럼
북극발 금속성 한파
콧김으로 녹인다

♧ 어떤 레시피
돌강돌강 돌강 15분
불 끄고 잠잠 15분
찬물에 다시 15분
그제야 건져내는
남편이 스스로 깨친
‘삶은 계란’
삶는 법

♧ 설유화
제주올레 5코스 위미리 조배머들코지
늦눈처럼,
돌아앉은 할망 하르방 바위 지나
불현듯 담장 너머로
하늘하늘 날 부른다
날 부른다,
별일 없다 시치미를 떼 봐도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나 뭐라나
오늘 밤 저 할망 하르방
슬쩍 돌아앉을까 몰라
*문순자 시조집 『가끔은 섬으로 돌아가 울고 싶을 때가 있다』(작가, 2025)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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