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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김종호 시집 '강나루의 대화'의 시(2)

by 김창집1 2025. 6. 7.

 

 

그 전능의 화가

 

 

툰드라에서 그는

동토의 청량함으로

오로라를 그리는 빛의 화가

 

이 겨울

하염없이 내리는 는

흰 빛, 그 찬란함으로

 

쓸쓸한 새벽길과

한낮, 도시의 굉음을 덮어

눈부시게 지우고 있다

 

어둠을 덮고

고통을 덮고

슬픔을 덮고

 

모든 색을

오직 흰 빛으로

사랑, 그 순결을 그리고 있다

 

 


 

하늘 길

 

 

새벽 고내봉*을 오르는 것은

네 미명을 짚어 가는 길,

마음에 촛불을 켜는 일이다

때로 넘어져서 올려다본 하늘에

솔숲 울울한 틈새를 열어

하안 기원의 강이

굽이굽이 산을 오르고 있다

오른편 능선에 공동묘지와

왼편으로 보광사를 끼고

한 걸음씩 더듬어 산정에 이르러

거기, 미답의 허공이 열리고

처음 하늘이 쏟아져 내린다

바닷바람은 순연(純然)하여 너는

한갓 흔들리는 풀잎

산의 숨소리를 듣는다

샛별은 오늘의 묵시로 빛나고

순례자의 동녘으로 숨이 찰 때

도저한 미명을 해치며

한 아름 애드벌룬을 띄우는 태양

하늘도 바다도 화염에 타오른다

물이랑마다 너울지는 생명의 불꽃

물새 한 마리 바디를 저어 가고 있다.

 

---

* 고내봉 : 제주 고내리에 있는 비고 176미터의 산. 고내오름이라고도 함.

 

 


 

존재

 

 

무심한 날들은

소나기 소리 따라

자르르 가버리고

 

헐떡거리며

산을 넘어온 것들

불을 끄고 가슴을 칠 때

 

, , !”

 

누구신지,

무슨 말씀이신지

 

너는 너로서

전부인 존재,

우주는 너로 있다.”

 

창가에

쏟아지는 달빛

 

베갯머리를 적시는

귀뚜라미

 

 


 

나 까딱없어

 

 

훈병시절 완전 군장하고

20km 행군할 때 발에 물집이 터져

절뚝거리며 걸었던 기억이 새롭다

 

주님의 고난을 생각하며

사순절 순례의 길을 걸을 때

젊은이들 따라 제주올레길을 걸을 때

팔십 중반에 털썩 주저앉고 싶었지만,

지원차량에 떡 앉아 가고 싶었지만

입술을 깨물고 걸었다

 

장로님, 그만 차를 타시죠?”

, 까딱없어!”

허장성세로 삼만 보를 걸었다

다리가 내 다리가 아니고

머리가 내 머리가 아니고

입에 거품이 일어도

, 까딱없어!”

죽을 둥 살 둥 걸었다

마음은 푸른 하늘이었다.

 

 


 

가을의 기도

 

 

열정의 무대는 막을 내리고

들판에 휑한 바람이 스산합니다

길가에 풀씨들이 톡톡 튀고

한 여름을 다 태우고 고요한 매미

까만 등껍질 위로 햇살이 따뜻합니다

흐느끼는 억새, 하안 나비들이

단풍 숲 너머로 떠나갑니다.

오늘도 숨 가쁜 하루

물속으로 잦아드는

장엄한 일몰의 때를 기다려

주여! 손을 모으고 눈을 감습니다

이내 북풍이 불어 닥치고.

산과 들, 낮은 지붕에도 눈은 내리고

세상의 헛된 말과 혼잡한 사상(事象)들이

순수한 빛으로 환원 될 것을 믿습니다

모든 연주를 끝내고 허허한 숲

멀어지는 뒷모습이 쓸쓸하지만, 주여!

오래 꿈꾸어오던 평화와 안식

하안 축복을 평평 내리시고

나목의 단출함으로 서게 하소서.

 

 

                      *김종호 시집 강나루의 대화(푸른생각, 2025)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