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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월간 '우리詩' 5월호의 시(완)

by 김창집1 2025. 6. 9.

 

 

빈 들은 빈 들이 아닙니다 신호철

 

 

빈 들이라 하지만 빈 곳은 없습니다

땅 속에는 셀 수 없는 씨앗이 잠자고

그곳을 걸을 때마다 발바닥이 간지러워요

발끝을 세워 걸어야 해요

한 톨의 씨앗도 깨워선 안 되니까요

 

봄에 깨어나기 위해 씨앗들은 잠들어 있겠지요

빈 들에도 셀 수 없는 단어들이 잠들어 있어요

 

그를 깨울 때는 그는 깊이 잠들었고

그가 나를 깨울 때는 너무 멀리 있었어요

 

그와 내가 만날 특별한 시간과 장소는 없어요

삶의 여러 갈래 길에서 만날 당신, 꿈틀거려만 주세요

 

봄을 기다리는, 빛나는 초록을 꿈꾸는 빈 들은

빈 들이 아니랍니다 나와 네가 만나 피워 낼

꽃 한 송이, 별 하나 품고 잠든 빈 들은

빈 들이 아니랍니다

 

 


 

만두 먹을래요? - 김명리

 

 

천변의 벚나무들은 며칠 사이

연두에서 녹음으로 가는 잎새들을

아우성처럼 매달았다

 

바람 좋은 날의 해거름길 걸어

돌보는 길고양이들 저녁밥 챙긴 뒤

모롱이의 작은 만두가게에 들어가

김치만두 일인분을 주문했다

 

만두맛 깊어 일주일에 한 번 꼴은

만두 한 접시로 거뜬하게

저녁을 해결하곤 하지만

들어서기 무섭게 내가 하는 일이란

리모컨을 찾아 TV부터 끄는 일

 

아무 일도 없으니 궂은일도 없는 오늘

오늘따라 천변의 저녁 물바람 푸르고 깊고

배부른 고양이들은

초저녁잠이 부르는지

잘 먹었단 인사도 없이 흩어지고 없다

 

지난해 꼭 이맘때 로드킬 당한

홍채이색 암코양이 오드아이(odd-eye)

빗물서껀 눈발서껀

그 진눈깨비 같던 목소리를 흉내 내

만두 먹을래요? 라고

 

앞서 가는 옛날을 돌려세우고도 싶은 오늘은

기쁨도 슬픔도 저만치

가 버리고 없는 어느 봄날 저녁

 

 


 

붕어빵 - 김정식

 

 

삼십 촉 전구 아래 배를 정박해 두었다

밤새 잡아 올린 물고기는

어망 옆에 식어간 채 잠들어 있고

창문 없이 달리는 바람은 천막을 흔든다

열두 구비 쇠틀을 돌리며

먼지를 닦고 기름을 붓는다

주전자에 남겨진 육신을 따르고

칸칸이 달아오르는 불꽃에

식어간 희망을 데운다

심연으로 떨어져 나간 물고기는

고층빌딩 넘어

새가 되어 나는 꿈을 꾼다

포구에 날리는 신문지를 보며

밤의 일기장을 읽는다

갈고리에 건져지는

하루 천 원의 목장갑,

실밥이 터진 사이로 보풀이 인다

방파제로 바람이 불어온다

어구에 채워지는 밤하늘의 비늘

내 혈맥을 타고 내려오는

집어등 불빛이 푸르고 어두운 바다를 비춘다

어두운 곳에서 불꽃은 더 타오르는 것

어둠에 노를 저으며

나는 저 먼 바다로 항해하리라.

 

 

                         * 월간 우리5월호(통권 제443)에서

                         * 사진 : 2025. 6. 8. 한라산둘레길 1코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