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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김영란 시집 '동백 졌다 하지 마라'의 시(6)

by 김창집1 2025. 6. 11.

 

 

유도화(柳桃花)

 

 

젖 곯아

밥 곯아

꽃들이

진다

 

팔월 염천에

눈 뜨고

진다

 

함부로 손대지 마라

허옇게 품은 독,

 

내리 사흘 배고파

한 살 여동생 울었다

 

영문 모르는 폭도새끼

젖 한 모금 못 얻어

 

열한 살 내 품에 안겨

벌겋게

꽃이 진다

 

 


 

멀미

 

 

섬에서

모든 길은 바다로 뚫렸다

 

섬에서

모든 길은 바다로 막혔다

 

제주해출륙금지령

오늘도

불심 검문

 

 

이명복 - 기다리며


 

기다리며*

   -정방폭포에서

 

 

깊고 푸른 그 밤에

 

동백 지던 그 밤에

 

주먹밥 한 덩이가

 

이별이던 그 밤에

 

하얗게 부서져 내리네

 

눈물 같은 뼛가루

 

 

---

*화가 이명복의 아크릴릭화 제목

 

 


 

고구마

 

 

  한 입 베어 물면 가슴께로 오는 통증 내 나이 다섯 살 아버지가 건네신, 마지막 인사하듯이 손에 꼭 쥐어주신,

 

  후다닥 나가시는 길 뒤따르던 총소리, 영문 모른 어머니 내 손 잡고 뛰었지 솔밭 기어 산등성이 을라 토끼처럼 숨었지 별들의 보호 받으며 밤이면 마을로 내려왔어 도둑처럼 제집 털어 해 뜨기 전 산으로 갔어 오르고 내리고 오르고 내리고 산이 집이었지 나를 지킨 집이었지 그게 오름이란 걸 커서야 알았어

 

  산사람이 폭도라면 우리도 폭도였지 폭도가 빨갱이라면 우리도 빨갱이지 어느 날 군인에게 잡혀 학교에 갇혔어 예쁘기로 소문난 고모 어디론가 끌려갔지 돌아오지 않았어 물을 수 없었지

 

  풀려나 집으로 와도 집은 집이 아니었지 아버지 찾아 고모 찾아 집에 가듯 산으로 갔어 토벌대다! 하는 찰나 어머니가 꼬꾸라졌어 십 년 넘게 옆구리에 총알 박고 살아야 했지 명 긴 게 벌이라던 어머니, 팔순 넘게 사셨어

 

  아버지 대신 편지가 왔지 마포형무소 소인을 달고 그것으로 끝이야 어디에도 아버지는 없었어 정뜨르 비행장에서 처형 소문이 돌았지 제 손으로 구덩이 파래서 총 쏘아 죽였다지 작은아버지는 거기서 죽었어

 

  기막히고 기막히고 억울하고 억울해 다섯 살 그 가을을 잊어본 적이 없어

 

  아직도 가슴에 걸려 내려가지 않아

 

 


 

송령이골

 

 

  아침을 향하던 시퍼런 죽창이 있다

 

  바다보다 산이 가까워 산으로 갔던 젊은 꿈들 길 잃은 구름처럼 산산이 흩어진, 약속한 적 없는 약속이 거기 있다 세상을 울다 지쳐 바닥에 몸부림치는 저 땅찔레처럼 산담도 비석도 없이 버려진 사람들 무심한 시간을 따라 산비둘기 울음 따라

 

  손톱 밑 가시를 핥아주는 몸 시린 새벽이 있다

 

 

 

                *김영란 시집 동백 졌다 하지 마라(한그루, 2025)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