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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김종호 시집 '강나루의 대화'의 시(4)

by 김창집1 2025. 6. 28.

 

 

너와 나

 

 

네가 울면서

세상에 나올 때

 

어머니 아버지

세상은 축복이 있다고 하는데

하늘 땅 나무 꽃 새 나비들

세상은 사랑이었다는데

 

그때 너는

햇살이 환하였을까,

구름이 무거웠을까?

 

그때였을 거야

내가 너를

바라보기 시작한 것은

 

네가 들소처럼

떠돌 때

 

네게로 가면서

기도를 배웠고

한없이 기다림으로

노래를 배웠다

 

이제는 네게서 돌아와

다만 기다림의 자세,

나무처럼 비우고 서서

하늘을 우러르고 있다

 

 


 

우연에 대한 생각

 

 

산길을 오르다가 우연히

분홍 꽃술 한들거리는

, 술패랭이꽃!

이 길 수없이 오가며

한 번도 만난 적 없었는데

 

어느 날엔가

밤하늘을 소요할 때

유난히 깜박이던 별 하나

긴 꼬리 흘리며 사라질 때

얼마나 마음 졸였느냐

 

먼 우주 어느 별에 우리의

최초의 설계도면이 있었을까

한 치의 오자도 없이

이 엄청난 우연

예정된 약속이었나

 

산길을 가다가

우리는 우연히

분홍색 술패랭이꽃

어느 하늘가에서

그리움으로 떠서

글썽이는 별일까

 

 


 

잃어버린 발자국

 

 

해는 중천에 누렇게 뜨고

아지랑이 불타는 들녘, 문득

사위는 멈추고, 새소리도 들리지 않는

무성 영화 속을 걸어가는 실루엣

어린 적 볕이 과랑과랑한* 들녘에서

*을 따먹으며 길을 잃었을 때,

겁이 와락 났을 때, 꿈결인 듯

나를 부르는 그 목소리

내 안에 누구실까

멈칫 멈추면 멈추고, 다시 걸으면

뒤를 당기는 목소리

슬며시 돌아보니,

저 어린것이 울고 있는 게 아닌가

 

너 거기서 왜 울고 있니?

-발자국을 잃어버려서요.

그깟 발자국은 어따 쓰려고?

-집으로 돌아가려고요

 

번쩍!” 번개가 스치자

아이는 간 곳 없고,

나는 왜 여기 서 있는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

* 과랑과랑 : (제주어) 햇볕이 이글이글 타는 듯한 모양.

* : (제주어) 산딸기.

 

 


 

강나루(此岸)의 대화

 

 

강나루에 무연히 섰노라니

하루를 무겁게 굴려온 해

불타는 강물로 잦아들 때

줄곧 따라온 바람일까, 툭 친다.

 

당신이 초조하게 기다리는 것은 무엇입니까?

-강을 건너려고 도강선을 기다리고 있지요.

나룻배는 언제 도착합니까?

-그야 강주인의 마음이겠지요.

당신이 줄곧 걸어온 길은 무엇입니까?

-후회와 아픔과 슬픔, 그리고 그리움입니다.

그때마다 사정없이 엉덩이를 들이받는

성질 고약한 염소 한 마리 몰고 왔지요.

당신이 애타게 찾아 헤매던 행복은 무엇입니까?

-, 그 또한 후회와 아픔과 슬픔, 그리고 그리움입\

왜 그런가요?

-행복은 그 모든 것의 화학 작용일 테지요.

바다의 눈물 진주를 보세요,

그 은은한 무지갯빛이 아픈 상처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지요.

당신은 사랑의 실체가 무엇이라 생각합니까?

-그것은 아버지의 회초리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용서의 눈물이지요.

아버지는 먼저 자신의 종아리를 때리십니다.

십자가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지요.

그러면 어머니의 사랑은 무엇입니까?

-사탄의 질투도 뚫지 못하는 암탉의 날개지요.

엄마’, 이는 너무 슬픈 이름이지요.

그러면 이성의 사랑은 무엇인가요?

-바라볼 때 황홀한 별,

닿는 순간 스러지고 마는 별,

언제나 가슴에서 반짝이지요.

그러면 완전한 사랑은 없습니까?

-그것은 그리움 너머에서 피는 꽃,

나를 다 소진하고 나서 비로소 피는 꽃.

왜 세상에는 완전한 사랑이 없는 것입니까?

-탐욕 때문이지요. 탐욕으로는

거울의 뒷면을 볼 수 없으니까요.

그런데 사람은 왜 죄를 짓습니까?

-하나님은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가요?

-아닙니다. 내가 존재하니까요.

허공은 텅 비어서 어디나 가득하지요.

그러면 사탄의 존재는 무엇입니까?

-그는 어둠의 제왕, 죽음은 그의 권력,

쾌락과 욕망은 그의 전가의 보검이지요.

사탄의 유흑은 무엇입니까?

-그의 혀 밑에서 내뿜는 모호한 안개지요.

개념이 삭제된 환상 속에 몸을 숨기지요.

당신의 약점을 살짝 말해주시겠습니까?

-…… 핑계입니다.

본의 아니었다는, 너무 취해서 필름이 끊겼다는

당신은 무엇을 위해 시를 쓰십니까?

-시는 쓰는 게 아니라 사는 겁니다.

길을 가는 자의 노래이지요.

당신의 인생에서 어떤 삶을 원하시나요?

-저 타이타닉호의 악사들의 연주입니다.

물속에 잠기는 순간까지 연주하는 것이지요.

, 배가 도착했군요. 잘 가세요.

-잘 있어요.

세상에 미련도 없다 했는데

왜 눈물이 나죠?

 

 

                          *김종호 시집 강나루의 대화(푸른생각, 2025)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