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마라도
마라도는 형용사다
당신을 꾸며주니까
바다에
홀로 있어도
울지 않는 품사다
당신은
나의 최남단
어딜 또 가란 말이냐

♧ 함덕 바다
월세를 지불하듯
찾아오는 함덕 바다
제주섬엔 드물다는
월세가 아니고선
연세를
내듯 온다면
속병 안 날 재간 있나

♧ 군함도
1.
세면대 가장자리에 달라붙은 곰팡이
증거를 매직 블록이 허겁지겁 인멸하고
대지는
긴 장맛비에
젖다 말고 울고 있다
2.
지워도 지워도 또 쓰이는 기록들
없던 일로 하자는 그런 역사는 없다고
군함도
그 지옥의 섬에
곰팡이가 피고 있다

♧ 최후의 해녀
바다가 해녀보다 더 빨리 늙는다는
바닷속 사막으로 낙타는 갈 수 없다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이 그곳일 순 없어도
양수 닮은 바다에서 알몸으로 살아온
조난신호 내뿜는 주름진 저 향고래
사람은 늙었다는 것이 살아남은 거라지
물속의 갯녹음 현상은 실패한 테러라는
성게가 흰 바위에 찔러 쓴 자백서로
말한다, 최후의 해녀는 아직 너무 이르다고

♧ 가파도 해발에 관한 접근
낮은 곳이 그리울 땐 가파도로 가시라
파도가 끌어당겨 웃자란 땅 볼 수 없고
수평선 층층이 서린 유채꽃 피고 지는
해풍이 채질하는 상동포구 도항선
청보리밭 밭담 따라 바람 묻혀 붓질해요
봄날도 승선권 없이 배를 타고 오는 섬
골목길 벽화 사이 흘림체로 부는 바람
하멜처럼 표류하는 등 뒤의 서술어는
이 땅의 낮은말들을 받아쓰는 것이고요
인파 속 사람보다 더 사람 닮은 사람 사는
빈 바다 한복판 섬보다 더 섬 닮은 섬
탄착점 낮춘 날에는 가파도로 가시라
* 시 : 조한일 시집 『낮은말 받아쓰기』 (가히, 2025)에서
* 사진 : 이렇게 더울 땐 파타고니아 빙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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