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대 아직 살아있다면*
- 반레 시인
명분 있는 전쟁은 아름다울 거라 생각했지
전쟁터 가는 길에는 아름다운 꽃이 피어 있을 거라고
시인 지망생인 내 친구를 뺏어갈 줄 몰랐지
내 형제 내 이웃을 죽이게 될 줄 몰랐지
승리해도 슬퍼질 줄 몰랐지
“너희가 내 자식들 죽였어!”
부메랑으로 돌아올 줄 몰랐지
“전쟁 중 네 총구 앞에 있는 사람은 누구나 적이란다
총구를 거두는 순간 사람만 있단다
적도 나도 없어 그저 사람만 있을 뿐”
어머니 말씀 불현듯 떠올랐지
오토바이들 질주하는 거리
보기만 해도 눈물 난다는 친구
다른 나라 전쟁 소식 텔레비전에서 봤다며
사람들이 평화롭게 질주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평온해서 감사하다고,
인생의 사고였다고
지난날은 사고였다고
---
*베트남 작가 반레의 장편소설 제목.

♧ 귓속말로 우는 뻐꾸기
만뱅디* 가는 길엔 찔레꽃만 피었더라
밤새 울던 눈물길에 소금꽃만 피었더라
죽어도 잊지 말자고 귓속말로 피었더라
무덤 많은 곳에는 뻐꾸기가 산다더라
소리 내 울지 못하는 무덤 무덤 저 뻐꾸기
만뱅디 뻐꾸기 울음이 하안 꽃을 피우더라
---
*제주도 한림읍 소재. 예비검속이란 미명 하에 아무런 재판도 없이 죽어간 46위의 시신이 안장된 공동묘역이 있는 곳.

♧ 곤을동 멀구슬나무
경계경보 방송처럼 싸라기눈 내리네
꽃도 잎도 다 떨군 늦겨울 가지에
차가운 눈물 몇 방울 그렁그렁 맺혀 있네
울음의 뿌리가 남아있는 빈 집터
해안선 5km 밖 소개령이 무색하던
아무도 돌아오지 못한 바닷가 그 마을
기억을 덮으려는지 포장된 을레길에
안부를 전하며 해마다 꽃은 피고
최후의 증언을 하듯 멀구슬나무 서 있네

♧ 불칸낭*
4․3 때 온 마을 불탄 선흘리에 가면
불에 타도 죽지 않은 나무가 있지요
숯덩이 가슴을 안고 지금도 살고 있죠
질기게 살아남아 더욱 아픈 목숨이죠
세월에 불연소된 뭉툭한 상처자국이
반역의 한 생을 돌아 시퍼렇게 눈을 뜨죠
---
*불에 탄 나무라는 뜻의 제주어.
* 김영란 시집 『동백 졌다 하지 마라』 (한그루, 2025)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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