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공원길 생각
아무도 없다
호린 날이다
마음을 추스르며 맨발로 걷는다
아까참에
옹골찬 양배추 서넛 갖고 온
승화는 변함없이 말수가 없었다
가게에서 만든 나가사끼 짬뽕
그녀가 가고 난 후에야
양배추를 켜켜이 썰어놓지 못한
내 맘이 야속하다
발등 실핏줄이 아프다
문득
소매 끝자락 젖는 그리움 밀려와
손 모아 기도하는 풀꽃으로 스민다

♧ 새벽 풍경
새벽이슬 맺으려다 물빛 달그림자
저속기어에 놓고 아파트로 접어든다
앞으로 고개 숙여 행렬로 쭈욱 뻗은
주차된 승용차 따라 마지막 끝 집
주차번호 그려진 그곳 301호
이맘때는 언제나 범종소리가 들린다
뚜벅뚜벅 돌계단 오른다
아직은 모두 잠든 시간
현관 앞 매달아 놓은 작은 풍경 숨소리

♧ 애기버섯
며칠 큰비 내리더니
가을이 성큼 곁에 서 있다
누구에게 도움 줄 수 없는
마음 자락 풀빛물이 갈빛으로
스멀스멀 기울며 앉아있는
카페 한 모롱이
혼자라서 좋을 때가 있듯
나는 늘 혼자의 방문이다
그리움 번지듯 짙은 안개비
어스름녘 산까치 울음
어느 누구에게도 갈 수 없는
우리 깊은 사랑
산이슬로 내리며 울어울어
제 몸 스스로 우산이 되는 에기버섯
어미는 오늘도 머물다 가노라

♧ 일기 하나
아침 6시 30분
새벽 장사를 마치고 잠든
나에게는 이 시간이 꿈길이다
하루도 빠지지 않은 어언 40년
추억의 일기로
써 내리는 사람이
오늘 문자 톡을 보내준 덕분인가
오후엔 눈밭을 볼 수 있었다
큰 상수리나무 아래 겨울 참새
발자국으로
나 대신 하안 글씨를 쓰고 있다

♧ 라이더
바람의 갈기로 오셨군요
낮 어스름 그리고 밤
타다다닥 따닥 삐거걱
좁은 계단 이층에서 아래로
달빛 실은 새벽 별똥
산천단동 2길 24번지
장가에 걸어둔 풍경 소원
잘 도착하소서 부디
*시 : 강윤심 시집 『속울음으로 꽃망울 맺고』 (한그루, 2025)에서
*사진 : 요즘 한창 피어나는 마삭줄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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