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감귤 꽃 필 무렵
언제쯤 몸 풀었는지 올망졸망 대여섯 마리
목줄 없는 개 떼 같은 새소리 바람 소리
때로는 순하다가도 어느 순간 으르렁 댄다
어디를 떠돌다가 우리 밭까지 흘러왔나
유치원 현장힉습하듯 킁킁 코를 들이대다
감귤 꽃향기에 취해 벌렁 드러눕는 봄날

♧ 국제시장 돼지국밥
먹는 것 하나에도 시대상이 묻어난다
6․25 그 난리 통에 부산까지 피난 와서
북녘 땅 고향 그리며
설렁탕 대신 먹었다는
펄펄 끓는 뚝배기에 베지근한 사골육수
눈물 반 그리움 반
게눈 감추는 수육 몇 점
남포동 돼지국밥을 제주에서 먹는다

♧ 경의선 숲길
여기쯤 내려놓을까
저기쯤 내려놓을까
딸아이 직장 따라 방 얻으러 다니는 길
우연히 홍대입구역, 이쯤에 내려놓을까
경의선 숲길,
서울과 신의주를 오가는 길
간이역 불빛마저 등 돌린 분단의 길
철마의 질주 본능도 숨 고르기 하는 길
사냥감을 쫓다가 뒤돌아보는 인디언처럼
책거리 땡땡거리 나도 잠시 뒤돌아본다
처얼썩, 단풍 물결에
절로 젖는 서울 한 칸

♧ 비와사폭포
때 아닌 역병으로 병원도 한산하다
사나흘이 멀다하고 중환자실 따라들면
콸콸콸 산소호흡기
폭포 소리 들린다
비가 와야 폭포다, 비와사폭포란다
서귀포 악근천 상류 협곡을 끌고 와서
한바탕 둑 터진 가슴 비워내고 가는 벼랑
길어봤자 사나흘
비 그치면 도루묵인데
아프다, 아프다는 건 살아있단 반증이다
어머니 한 생애 같은
엉또폭포 울음 같은

♧ 옳거니
술 담배는 사람들만 좋아하는 게 아니었다
우듬지 감귤까지 갉아먹던 명주달팽이
밤사이
먹다 남은 맥주
컵 주위로 몰려든다
그걸 보던 남편은 거기다 한술 더 떠
피우던 담배 한 개비 천연스레 걸쳐놓는다
옳거니
신의 한수다
내 손에 피 안 묻히는
*문순자 시집 『가끔 섬으로 돌아가 울고 싶을 때가 있다』 (작가, 2025)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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