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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문순자 시조집 '가끔 섬으로 돌아가 울고 싶을 때가 있다' (5)

by 김창집1 2025. 7. 9.

 

 

감귤 꽃 필 무렵

 

 

언제쯤 몸 풀었는지 올망졸망 대여섯 마리

 

목줄 없는 개 떼 같은 새소리 바람 소리

 

때로는 순하다가도 어느 순간 으르렁 댄다

 

 

어디를 떠돌다가 우리 밭까지 흘러왔나

 

유치원 현장힉습하듯 킁킁 코를 들이대다

 

감귤 꽃향기에 취해 벌렁 드러눕는 봄날

 

 

 

 

 국제시장 돼지국밥

 

 

먹는 것 하나에도 시대상이 묻어난다

625 그 난리 통에 부산까지 피난 와서

북녘 땅 고향 그리며

설렁탕 대신 먹었다는

 

펄펄 끓는 뚝배기에 베지근한 사골육수

눈물 반 그리움 반

게눈 감추는 수육 몇 점

남포동 돼지국밥을 제주에서 먹는다

 

 

 

 

경의선 숲길

 

 

여기쯤 내려놓을까

저기쯤 내려놓을까

딸아이 직장 따라 방 얻으러 다니는 길

우연히 홍대입구역, 이쯤에 내려놓을까

 

경의선 숲길,

서울과 신의주를 오가는 길

간이역 불빛마저 등 돌린 분단의 길

철마의 질주 본능도 숨 고르기 하는 길

 

사냥감을 쫓다가 뒤돌아보는 인디언처럼

책거리 땡땡거리 나도 잠시 뒤돌아본다

처얼썩, 단풍 물결에

절로 젖는 서울 한 칸

 

 


 

비와사폭포

 

 

때 아닌 역병으로 병원도 한산하다

사나흘이 멀다하고 중환자실 따라들면

콸콸콸 산소호흡기

폭포 소리 들린다

 

비가 와야 폭포다, 비와사폭포란다

서귀포 악근천 상류 협곡을 끌고 와서

한바탕 둑 터진 가슴 비워내고 가는 벼랑

 

길어봤자 사나흘

비 그치면 도루묵인데

아프다, 아프다는 건 살아있단 반증이다

어머니 한 생애 같은

엉또폭포 울음 같은

 

 


 

옳거니

 

 

술 담배는 사람들만 좋아하는 게 아니었다

우듬지 감귤까지 갉아먹던 명주달팽이

밤사이

먹다 남은 맥주

컵 주위로 몰려든다

 

그걸 보던 남편은 거기다 한술 더 떠

피우던 담배 한 개비 천연스레 걸쳐놓는다

옳거니

신의 한수다

내 손에 피 안 묻히는

 

 

         *문순자 시집 가끔 섬으로 돌아가 울고 싶을 때가 있다(작가, 2025)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