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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월간 '우리詩' 6월호의 시(완)

by 김창집1 2025. 7. 9.

 

 

놀라운 일 정순영

 

 

봄이 2월의 징검다리를 성큼성큼 건너온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죄인의 우두머리 사올이 주님의 은혜로 복음을 전하는 바올이 되듯이

나라의 싱그러운 보리밭을 한파로 헤집던 엇자란 생각들이

참빛 한 가닥에

마음의 어두운 흠결이 괴로워

가진 죄 내어놓고 눈물로 참회하고

봄바람 한 자락에 용서와 사랑으로 연초록 눈을 부비며

옹고집 추위를 풀어 밭두렁에 냉이와 달래를 싹틔우는

봄이 2월을 건너온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빅토리아 김나비

 

 

책상에 고개 박고 그림을 그린다

집을 그리고 하늘을 그리고 비행기를 그려

우크라이나로 날아간다

나의 세상은 평화롭다

 

운동장 트랙 안에서 아이들과 달리기하는 그림을 또 그린다

알렉산더를 제치고 제트기처럼 달린다

그림 속에서 가끔 전쟁놀이를 한다

아무리 총을 쏴도 누구 하나 죽지 않는다

 

그림을 접고 강당 처마 밑에 둥지 튼 딱새 가족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날이 길어진다

집 밖으로 입 벌리고 있는 아기새에게

조근조근 손을 흔든다

가슴이 붉은 어미가 먹이를 구해서 넣어 준다

 

어미가 없는 사이

떨어진 아기새를 주머니에 넣고 돌아온다

엄마 새에게 미안하지 않다

길 잃은 죽음은, 어던가 살았을 거라는 희망의 불씨를 지피니까

영문도 모르는 죽음이 유령처럼 떠도는 곳에서도

살아 있을 거라며 가슴을 토닥일 수 있으니까

 

그림을 검은 크레파스로 몽땅 덧칠하고 스케치북을 덮는다

나의 세상이 사라진다

 

 


 

채식주의자 김세형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는

하루도 그치지 않는 짐승 같은 야만적 폭력과 전쟁,

난 노벨문학상 수상작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읽고

무척 공감 가는 바가 있어 며칠을 고민하다

마침내 육식을 포기하고 채식주의자가 되기로 했다

그래서 첩첩산중 깊은 숲속으로 들어갔다.

각종 식물로 가득한 숲속은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난 큰솔나무 밑에서 물구나무를 섰다.

나무가 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밀짚모자를 눌러 쓴 노승 한 분이

육환장을 턱, , 짚으며 숲길을 지나다

요상스러운 짓을 벌이고 있는

나를 멈춰 서서 한참을 바라보더니 내게

화두 던지듯 한 마디 툭, 던져 놓곤

, , 다시 숲길을 걸어가는 것이었다

 

큰솔 아래서는 잔솔이 못 자란다

 

 


 

늘푸른 영혼 김종욱

 

 

눈송이처럼 차가워졌다 너에 대한 기억이

아무 데나 피어난 민들레처럼 웃으며

계절에 꽃 피었다가 시들고 잊혀 갔다

 

흰민들레는 솜털 같은 순정한 낱말들을

실뭉치처럼 엉겨 버린 속내로 간직하다가

마지막 숨결에 다 실어 구름에게만 읽어 줬다

 

언어로 정의하지 못한 순진했던 감상은

구름 속에서 모호한 채로 얼어붙어 무거워지고

눈처럼 슬픈 현실로 내려 쌓이기만 하였다

 

가슴속에 오래 짓눌린 푸른 불꽃의 추억도

더 뜨거워진 열기에 검게 검게 죽어서

쉽사리 불타 버리는 굳은 몸만 남겼다

 

그러나 검은 돌처럼 굳어 버린 몸에는

오랫동안 타오르던 푸른 추억의 침묵이 있다

희망이 잎사귀마다 멍으로 번졌었던

 

더 단단하게 멍울져 가는 한숨은 마침내

압력과 열기로 새로운 몸을 갖고

빛나는 돌이 되어서 찬란하게 빛날 것이다

 

칠흑의 몸에 생긴 빛의 균열만이 별빛이니까

푸른 꿈을 간직한 소멸만이 꽃씨 되니까

겨울이 하안 재로 날려도, 봄꽃은 살아난 불씨

 

빛나는 돌들이 어둠 속에서 눈뜨고

얼음이 녹은 자리에 봄 햇살 내려앉는다

민들레 다시 소곤대면 별들이 피어난다

 

겨울밤 차고 어두웠던 하늘에 뿌리 내린 뒤

지상의 봄을 찌르는 삐죽한 빛의 이파리,

밤하늘 영원의 계곡에 푸른 별빛이 자라난다

 

 

                                 * 월간 우리6월호(통권 제444)에서

                                              * 사진 : 애기도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