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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김수열 시집 '날혼'의 시(9)

by 김창집1 2025. 7. 17.

 

 

데칼코마니 2

 

1

194913

여수시 종산국민학교에 수용되었던 부역 혐의자 125명은

만성리 깊은 계곡으로 끌려갔다 새벽이었다

 

5명씩 총살당한 후에 다시 5명씩 장작더미에 눕혀져

5층으로 쌓은 시신 더미가 5, 125

층층겹겹 쌓아올린 5층탑 5개에 콜타르 부어 불을 태우고

행여 가족들이 찾을까 돌덩이 굴려 덮었고

살점 타는 냄새가 달포를 넘겼다

 

남은 유족들, 어찌해볼 도리가 없어

죽어서라도 형제처럼 지내라고 형제묘라 하였다

 

 

 

2

1950년 음력 칠월칠석날

모슬포 고구마 창고에 임시 수용되었던 예비검속자 132명은

섯알오름 굴형으로 끌려갔다 새벽이었다

 

신사동산 지나 죽음을 예감하자 신발 던져 길을 내고

새벽별처럼 와다다와다다 총성이 쏟아져 내리고

허둥지둥 찾아온 유족들에겐 가까이 오면 빨갱이라 윽박지르고

멜젓 썩는 냄새에 눈 돌아간 마을 개가 사람을 물어 뜯고

머리통 하나에 남은 뼈 몇 개 대충 맞추어 봉분을 썼다

 

남은 유족들, 어찌해볼 도리가 없어

한 조상 모시듯이 지내자고 백조일손이라 하였다

 

 


 

어머님 전상서

 

 

불효자 상길입니다

철창 사이로 차오르는 달빛이 그윽합니다

물소리 풀벌레 소리도 어제처럼 잔잔합니다

가족들 두루 여여하신지요

저도 삼시 세끼 부족함 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님

충과 효는 양립할 수 없다는

성현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깁니다

조국을 택하면 집안을 버려야 하고

가족을 택하면 민족을 버려야만 하는 시대입니다

다만 선택의 기로가 조금 일찍 제게 왔을 뿐입니다

제가 선택한 길, 후회도 미련도 없습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고 그게 나였을 뿐

두려움도 아쉬움도 없습니다

새벽이슬처럼 영롱하고 고요합니다

그저 식구들에게 미안하고

뜻을 함께한 동지들에게 송구한 마음입니다

 

사랑하는 어머님

날이 새면 저는 먼 길을 가야 합니다

그 끝자락에서 주님의 인도하심을 믿기에 외롭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시간이 기다려집니다

시 간이 다가올수록 따뜻하고 포근해집니다

아쉬움이 있다면 통일된 조국을 보지 못함입니다

더 큰 용기와 더 큰 결단이 부족했던 제 탓입니다

 

어머님

그리움은 그리운 대로 그냥 두고 떠나겠습니다

먼 훗날을 기약한다는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겠습니다

살육과 광기의 공포가 없는 맑은 세상에서 어머님을 기다리겠습니다

이승의 꽃산천 훠이훠이 유람하시고 여유롭게 오시기 바랍니다

죄 많은 불초소생이 저승의 동구 밖에서 마중하겠습니다

그날까지 아름다우시고 여유로우시길

 

어머님,

어머님은 저의 첫사랑이자 끝사랑입니다

 

무자년 922일 장남 문상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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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43항쟁 당시 모슬포에서 9연대 중대장으로 근무하던 남조선국방경비대 중위. 초토화 작전을 밀어붙이던 11연대장 박진경 대령을 암살했다.

 

 


 

망월동에서

 

 

인자 울지들 말어

다시는 이런 아픔 없도록 진상 밝히고

책임자처벌하려면

맘 다부지게 먹어야 써*

 

19805

고등학생 아들을 잃은

하안 소복의 광주 어머니가

20144

고등학생 아들을 잃은

노란 리본의 세월호 어머니 손을 잡고

오래도록

아주 오래도록 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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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519한겨레에서 인용.

 

 

                           *김수열 시집 날혼(삶창시선 87, 2025)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