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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김종호 시집 '강나루의 대화'의 시(5)

by 김창집1 2025. 7. 19.

 

 

너를 떠나라

 

 

나무처럼 의연하라

잘그랑 잘그랑 끌고 오면서

한 번도 빛난 적 없는

시뻘건 분출을 위하여

얼마나 떠나고 싶었느냐

어항을 빙빙 도는 고양이

그 집요한 눈빛으로, 끝내

길가의 꽁초를 집어 들 때,

누런 손가락이 떨릴 때, 그때

기뻤을까, 슬펐을까, 분노했을까

 

너를 떠나라

떠나지 않고

네게로 가는 길을 모른다

옥죄는 연민과 집착,

고통과 절망도 지고 떠나라

밤마다 캔버스에

그렸다 지우고, 다시 그리는 열망

아침이 되어 텅 빈 허망은 슬프다

구원의 약속이라도 되는 듯이

줄곧 기웃거리던 것들

새처럼 할딱거리던 가슴

네 사랑이 그랬고, 네 시가 그랬다

 

너를 떠나라

나무처럼 의연하라

바위처럼 바라보라

산 아래 까마득한

절망은 빛나는 시작,

바닥을 차고 나온 해녀의

물숨을 다한 숨비소리여!

뼛속을 비워내고 나서

후르르 날아오르는 새의 날갯짓이여

 

오늘도 해는 뜨고

약속은 계속되느니

지금은 사랑을 말할 때

너를 떠나라, 떠나지 않고

네게로 가는 길을 나는 모른다.

 

 


 

새소리 9

 

 

하늘을 건너는 새들은

쉬지 않고 날개를 파닥이지

새들의 하늘엔 거짓이란 없지

별빛으로 눈을 씻고

새벽이슬로 가슴을 닦고

새들은 길을 잃지 않지

무한 고독을 건너는 새들은

쉬지 않고 노래를 부르지

부르며, 부르며 날아가지

 

사람들은 지름길을 찾지

곧잘 자려 입고 몸을 숨기지

미심쩍은 사람들은 기록을 뒤적이지

떨리는 손으로 기록한 역사는

고장 난 레코드, 제자리만 맴돌지

 

잃어버린 본성이 그리운 사람들은

바벨론의 강가에서 시온을 노래하지

눈이 벌건 사람들은

내 안에 길을 두고 산 너머로 떠나지

뒤를 돌아보지만 길은 지워지고

탄식하며 가슴을 치지

예술은 더욱 그리워지려는 것

과장된 위로를 찾아 해매지

슬픈 짐승처럼 울부짖지

 

새들의 날개는 자유롭고

새들의 노래는 하늘 끝에 파랗지

 

 


 

나무여, 바위여, 낙엽이여!

 

 

나무여! 그대는 무엇이 간절하여

종일 하늘로 우러르고 있는가?

 

바위여! 그대는 무슨 비밀이 그렇게 많아서

문을 닫아걸고 천만년 침묵을 견디고 있는가?

 

고드름이여! 그대는 무슨 한이 많아서

마음을 꽁꽁 얼리고 허공에서 칼을 갈고 있는가?

 

낙엽이여! 그대는 무슨 슬픔이 많아서

정처 없이 바람의 길을 떠돌고 있는가?

 

별이여! 잊지 못할 사연은 무엇이기에

밤이 새도록 깜박이고 있는가?

 

산이여! 그대는 누구를 위하여

그렇게 무거운 짐을 지고 끙끙대는가?

 

강물이여! 그대는 무슨 고민이 그리 많아서

생각의 끝을 끌고 끝없이 흐르고만 있는가?

 

바다여! 그대는 무슨 회한이 그렇게 많아서

부서져라, 부서져라! 가슴을 치며 울부짖는가?

 

세상을 품은 하늘은 하늘을 다 풀어놓는데

웬 그리움으로 너는 노을 앞에 하염없는가?

 

 


 

놓친다는 것

 

 

제주시에서 술을 마시다가 막차를 놓치고 그는

심심치 않게 네댓 시간을 걸어서 집에 오곤 했다

그렇게 지구 버스를 놓쳤다

표류하는 배 같았다

말똥가리는 온몸으로 내리꽂혀

날아가는 생의 순간을 움킨다

시간도 기회도 충분하였지만

그는 말똥가리처럼 살지 못했다

소리치는 거리, 사람들의 눈빛 뒤에서

세상은 너무 넓고 두려웠다

세상은 그런 거라고

환경은 내 탓이 아니라고

밤마다 꿈을 꾸었다, 개꿈이다

그의 개꿈이 현실이 되었다면

그 무게에 짓눌려서

그의 지금은 없을 것이었다

더러는 놓치고 살아도 좋을 일

부러 놓치기도 하면서, 슬픈 일이지만

그 많은 후회가 그의 오늘을 조율하였다

그는 미끈한 시인도 화가도 못되지만

몰입과 사유는 조각가의 정과 망치

뒤에서 천천히 걸어가면서

앞선 지들이 놓친 낱낱을 본다

돌아온 탕자가 회개할 것 없는 아들보다

아버지의 큰 기쁨이 되었다는 것은

그가 위로 받는 유일한 역설이다

막걸리 한 잔에 천하를 얻은 듯이 그는

지금도 개꿈을 꾸는 자신을 사랑한다

하나님은 그 아닌 그를 만들지 않았기에

그가 세상의 존재 이유가 된다

그의 뜰 감나무에서 노래하는 새는

한 번도 파랑새인 적이 없지만

이 겨울 메마른 가지에서

바람에 떨면서 노래하는 직박구리는

파랑새가 아니어서 형제만 같다

 

 

                *김종호 시집 강나루의 대화(푸른 시인선 030, 2025)에서

                                        * 사진 : 물빛을 따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