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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오영호 시조집 '농막일기'의 시조(8)

by 김창집1 2023. 11. 20.

 

 

앓던 이가 빠진 듯

 

 

일요일

이른 아침

찾아온 문 선생 왈

 

어떤 시는 열 번을 읽어도 뭣을 노래했는지 알 수가 엇수다* 이럴 땐 어떵 햄수과?** 그냥 대껴붑서***

 

하하하

무릎을 치며

앓던 이가 빠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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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없습니다

** 어떻게 하십니까

*** 던져버리세요

 

 

 

 

지아방* 꼭 닮앙

 

 

  우리 강아지 왔구낭 공분 잘 햄시냐?

 

  빙색이 웃는 손지** 얼굴 공부에 담 쌓구나 느 아방도 에큔가 지큔가 100은 넘었덴 해도 공부는 안ᄒᆞ곡 여기저기 ᄃᆞᆯ아만다니멍 ᄎᆞᆯ람생이*** 노릇만 했져 그 피가 어디 가느냐마는 아방 닮지 말앙 하는 체라도 해보라 허염시문 해진다

 

  손자는 듣는 둥 마는 둥 핸드폰만 보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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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

** 손자

*** 남 앞에 나서기 좋아하는 사람.

 

 

 

 

물외 된장 냉국

 

 

  조밭

  검질* 매다

  중천中天에 해가 머물면

 

  멀구슬나무 그늘 밑으로 날 데리고 간 어머니는 맹물에 된장 풀고 숟가락으로 물외** 듬성듬성 잘라 넣어 만든 된장국에 나는 보리밥 한 덩어리 닥닥 조망*** 푹 뜬 숟가락에 마농지**** 찢어 놓고 입에 넣어 몇 번 씹지도 않고 꿀꺽 삼키면

 

  더위도

  괴로움도 배고픔도

  한 방에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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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초) ** 조선오이 *** 말아 **** 풋마늘 장아찌

 

 

 

 

억새꽃 너를 보면

 

 

동짓달

오름 들녘

너를 마주하면

 

지난여름

서슬 퍼런 결기

한잎 두잎 날려 보내며

 

때 되면

낮추는 일이라고

가벼워지는 일이라고

 

늙어

간다는 것은

서서히 부드러워져서

 

꽃 열매

다 떠나보내고

내려놓는 일이라고

 

내 어깨

어루만지며

가만가만 타이르네

 

 

 

 

터지다

 

 

  아들아 태풍도 나쁘게만 보지 마라

 

  바당도 뒈싸부러야* 큰 고기들이 놀러 나오고, 내가 터져야 더럽고 메스껍고 구질구질한 것까지 막힌 하수구가 터지듯 시원하게 다 쓸어 바다로 가는 흙탕물을 보아라

 

  지구의

  카타르시스

  누웠던 풀 일어서는

 

 

                     * 오영호 시조집 농막일기(동학사, 2023)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