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한 날 1
아직 완전히 어두워지지 않은 저녁, 집으로 가는 버스가 병원 앞을 지납니다.
커브 담 위 담쟁이들 가득 수도 없이 연두색으로 돋았습니다. 그 앞 처녀들 팡팡 걷습니다. 희끄무레한 창들 앞에서.
♧ 때죽나무 꽃
별은 밤하늘에만
있는 게 아니다
절물 너나들이길 위에도
있다
무수히 종을 울리다
떨어져
더 빛나는
♧ 과녁
정류장 처마
빗방울 하나
머리에 떨어졌다
우주 어디에서
온 화살
삼사석三射石 부근
내릴 때
마비가 풀렸다
♧ 악력
아내의 손목은 나보다
훨씬 굵다
그 손으로 텃밭을 일구고
음식을 쓱싹쓱싹 하고
뚝딱 수리도 하고
내 손목은 얇다
힘들지 않은
책장이나 쓱쓱 넘기고
가벼운 가방을 메고
♧ 평화양로원 2
모두 안에만 있는지
늘 멈춰 있는
가는 봄날
한 남자
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노래한다
“오동추야 달이 밝아…”
들썩인다
* 나기철 시집 『담록빛 물방울』 (서정시학, 2023)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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