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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나기철 시집 '담록빛 물방울'의 시(4)

by 김창집1 2023. 11. 23.

 

 

환한 날 1

 

 

  아직 완전히 어두워지지 않은 저녁, 집으로 가는 버스가 병원 앞을 지납니다.

  커브 담 위 담쟁이들 가득 수도 없이 연두색으로 돋았습니다. 그 앞 처녀들 팡팡 걷습니다. 희끄무레한 창들 앞에서.

 

 

 

 

때죽나무 꽃

 

 

별은 밤하늘에만

있는 게 아니다

 

절물 너나들이길 위에도

있다

 

무수히 종을 울리다

떨어져

더 빛나는

 

 

 

 

과녁

 

 

정류장 처마

빗방울 하나

머리에 떨어졌다

 

우주 어디에서

온 화살

 

삼사석三射石 부근

내릴 때

마비가 풀렸다

 

 

 

 

악력

 

 

아내의 손목은 나보다

훨씬 굵다

그 손으로 텃밭을 일구고

음식을 쓱싹쓱싹 하고

뚝딱 수리도 하고

 

내 손목은 얇다

힘들지 않은

책장이나 쓱쓱 넘기고

가벼운 가방을 메고

 

 

 

 

평화양로원 2

 

 

모두 안에만 있는지

늘 멈춰 있는

 

가는 봄날

한 남자

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노래한다

 

오동추야 달이 밝아

 

들썩인다

 

 

 

                * 나기철 시집 담록빛 물방울(서정시학, 2023)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