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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혜향문학' 2025년/상반기 제24호의 시(1)

by 김창집1 2025. 7. 21.

 

[문인 초대석]

 

 

석류 - 고광자

 

 

동그랗게 맺혀있는 저 고운 마음

그 이름 아름다워 석류라 하네

 

살아온 날들이 사랑으로 열려

노을로 붉게 붉게 타오르고 있네

그대에게 가고 싶어 찾아온 가을빛.

 

알알이 배인 마음 나의 뜰 앞에

그 이름 아름다워 석류라 하네

 

지나온 날들이 가지마다 열려

노을로 붉게 붉게 타오르고 있네

그대에게 가고 싶어 찾아온 수줍음.

 

 


 

배롱낭 꼿 양전형

 

 

뜨건 몸

햇살에 비벼대던 배롱낭

긴 몇 밤 건너더니

꼿을 내기 시작한다

 

동글동글 부픈 꽃망울들

내 안에

주책의 나이에도 매달린다

 

피고 떨어지고 여물고 피고

정갈한 옷매무새

활활 백 날이 탄다

 

---

*배롱낭 : ‘목백일홍세주어.

 

 


 

시가 발아하는 이유 김정숙

 

 

시와 시 시에 시 그리고 시 그래도 시

어떤 식으로 풀어도 시의 모든 답은 씨다

공들인 늦여름 한쪽 내미는 시흥리 들판

 

줄 맞춰 또박또박 무를 쓸 참인가 보다

무력 무력은 무가 키울 문장인가 보다

잎 뿌리 다 챙겨 주는 건 무의 철학인가 보다

 

꼬투리 꿈을 꾸며 봄으로 건너간 꽃은

표준화 대량생산 함수에 걸렸나 보다

의도적 질량 미달의 무시를 심나 보다

 

 


 

연금鍊金 - 류미야

 

 

오래전, 태운 재로 빨래를 했다지

 

타고 남은 것으로

순백을 낳는 일은

 

어쩐지 날 안심시킨다

비 오는 날

빨래를 한다

 

구겨진 허물들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베갯잇에 스민 내가

다른 나와 뒤엉킨다

 

그사이

머리를 감고

바닥을 닦는다

 

창밖, 아직 비 오는데 빨래는 마른다

 

좁은 처마 밑에도

젖으면서 마른다

 

내일은 날이 개리라

곧 폭염이

무성하리라

 

 


 

가는 길 정복언

 

 

동구 밖 늙은 팽나무가

세월을 메쳐버린 나를 바라본다

 

귀 먼 나는 소리와 차단되어

잎사귀들의 언어를 병아리처럼 쪼아대면

가지마다 옹이진 설움이 보인다

 

발아하는 눈길은 늙은 세월을 우러르고

꿈길을 서성이는 햇살은

상념의 그늘을 회유하면서

하루를 데리고 간다

 

여름의 속살을 갉아 먹던 풀벌레 소리

가을의 들녘을 휘돌더니

물그림자 고요를 일으켜 세운다

 

금빛 해돋이 파도에 부서져

뿌옇게 시야에서 비들거릴 때

꿈마저 버려야 한다면

자욱한 안개로 만상의 인연을

한 번쯤 껴안고 싶다

 

이별의 손짓 흔들며

바위의 보폭으로 서산을 넘고 싶다

 

 

                     *혜향문학2025/상반기(통권 제24)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