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오래된 그물
바다를 덮쳤었던 오래된 그물 하나
따가운 여름 햇살 포획하듯 삼킨다
수천 번 제 몸 던지며
꿈꿨을 만선 귀항
물 밖에 나온 물고기처럼 헐떡이며 포구에 누우니
그물코에 걸려드는 시간의 비늘을 본다
모진 삶 촘촘히 살아온
바다로 또 가려 하네

*강요배 그림
♧ 1947년 관덕로의 봄
72년 3월 초 탑바리 아이 조 아무개
정해년 3․1절 6인이 숨진 발포에 대해
무엇도 듣지 못한 채
북국민학교 들어간다
도남 농부 송덕윤
도남 농부 김태진
오라 농부 양무봉
아라 농부 오문수
박재옥 도두 애 엄마
허두용 북국민학교 학생까지
그 후로도 반세기 살암시난 살아졌다는
레드 아일랜드 누명 속 위리안치 벗어난 증언
7년 반 광풍 몰아친
제주섬의 생환기
시위와 관람 사이 백비와 정명 사이
맹독성 이데올로기의 말굽에 또 차여도
끝끝내 나뒹굴다가
다시 서는 봄이여

♧ 메이데이 on Cheju-do
노동절과 같은 날 낯선 작명 메이데이
평화는 아지랑이, 쟁취하는 것이었다
불타는 오라리를 찍은
선전영화 악마의 편집
김달삼 김익렬이 움켜쥔 제주의 운명
내통과 밀고 마魔의 3일 평화협정 외줄 타다
공작의 시나리오가
결렬시킨 연미의 봄
무장대 소행으로 둔갑한 민가 방화
핏빛 화산섬 서막 연 미군정의 명분 찾기
불씨를 스리슬쩍 당겨
대학살을 허許하다

♧ 범섬
남도 땅 남쪽 바다 웅크린 범의 혈육
수직형 물의 문자에 부딪히는 저 파도
수만 개 주상절리가
기립박수 치는 거다
움푹 파인 해식동굴 너울을 포획하고
저 건너 강정마을 상처 입은 구럼비
절*치는 단애를 보며
목호를 생각한다
---
*파도의 제주어.

♧ 08시 49분을 인양하다
4월이 와도 맹골수도는 아무 말이 없구나
푸르던 꽃잎들이 물속으로 지던 날
있어도 없었던 나라 여전히 변한 게 없고
불러도 대답 없는 삼백넷 이름 앞에
절대 잊지 않겠노라는 팽목항의 그 약속
가만히 있으라면서 그들만 탈출했다지
안산에서 제주까지 끝나지 않은 수학여행
기울어진 세월호 속 꿈 많던 내 아이들아
그 먼 곳 그 산하에도 시간은 가고 꽃은 피니?
그렇게 다녀온다던 너희들은 가고 없고
아무것도 모른 채 너는 가고 나는 남고
사일육 공팔 시 사십구 분 아직 인양 중이란다
*조한일 시집 『낮은말 받아쓰기』 (가히, 2025)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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