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녀
시를 읊조리듯 낮은 음성
커피를 내리는 손길 옆에서
계란빵을 접시에 올린다
짧은 안부에도 늘 감사
나는 오늘 누구를 위한
사랑을 전하지 못했다
카페문을 나서다
바람 한 점 없는 오후
겨울은 그녀로부터 따스하다

♧ 귀가 시간
야식 장사를 마치고
새벽으로 시동을 걸어놓는다
누수가 흐르듯
땅으로 눈꺼풀이 풀린다
거리에는 아무도 없이
이따금 재빠른 킥보드 지나간다
비탈길 솜 태움 양철 쪽문으로
쏜살같이
여명의 샛바람이 든다

♧ 커피콩 사랑
한 번 더
안아주지 못하였다
스물아흡 떠나보내고
큰 나무로 서 있는
글썽글썽 붉은 열매
목젖 부어오른 그리움
함께 마시던 커피잔
어루며 있다

♧ 무의미
생명의 뿌리는 어디에 있는가
길을 걷다 밟힐 듯 소스라치는
나의 발바닥 아래 노란 화관
민들레 아기꽃 웃고 있다
쇄골 아픈 바람이 불 때마다
머플러 휘휘 감겨오는 통증으로
길을 나서면 생명의 물소리
충혈된 눈으로 마음의 창 여는
나는 늘 미안하다
공원의 자갈돌을 밟으며 아픈 발
어깻죽지 그리고 그리움에게
날개 피어있는 가난을 선물한다

♧ 소소호호
길을 걷는다
바람과 함께 어스름길
중년의 허리춤 그 골목을 가고 있다
소소흐흐 교복 왼쪽 가슴에 명찰처럼
두 갈래 땋은 머리 어깨 위로 내리고
소녀 인형이 웃고 있는 하안 집 북카페
책을 고르며 단발머리 여자가 웃고 있다
한 켠 긴 소파 탁자에 모인 그녀들은
조각 케익과 허브티
댕우지와 찹쌀 와플
낡은 책상 지평선을 그려내듯
웃음소리
그때 철수와 명희는 잘 살고 있다지
우리의 첫사랑 동화책 속으로
네잎클로버 갈피 초승이 뜬다
*강윤심 시집 『속울음으로 꽃망울 맺고』(한그루, 2025)에서
* 사진 : 요즘 한창인 해녀콩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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