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찰나
능히 발 뻗어도 될 천여 평 밭인데도
굳이 열차처럼 돌담레일 넘는 정오
불러도 속수무책인
저 기적汽笛의
호박꽃나팔

♧ 테우가 사라졌다
어쩌다 비정규직 안전펜스도 잘렸는지
이호해수욕장 심벌같이 깃발을 날리던 데우
한 마디 안내방송도 없이
수면에서 사라졌다
트로이 목마 같은 조랑말등대로 마실 갔나
십여 년 전만 해도 자리돔 뜨던 뗏목
날렵한 조형물로 남아
바람이나 낚고 있다

♧ 으름난초
삼 년 만에 왔는데
또다시 돌아가라면
어느 절 밥그릇 같은
바리메오름 들머리
한 생애
허기진 가슴
소신공양 하겠네

♧ 연화못 빗소리
아무래도 호랑이 장가를 가나보다
오락가락 빗소리 연화못에 빗소리
꽃단장 어머니 뒤를 따라가던 빗소리
“느네 아방 보나마나 새장가 가실 거여”
귀양풀이 그 심방 입을 빌린 한마디
연화못 연꽃에 피는 풀무치 울음 같은

♧ 오라동 메밀밭
가을걷이 갓 끝난 오라동 저 메밀밭
뭉덕뭉턱 잘려 나간 저 붉은 그루들이
유부도 검은머리물떼세
가녀린 발목 같다
가까이 다가가면 바람처럼 날아오르는
갯지렁이 파먹는지 연신 종종거리다
밀물녘 조각 갯벌에
자리다툼 하던 텃새
*문순자 시조집 『가끔 섬으로 돌아가 울고 싶을 때가 있다』(작가, 2025)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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