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무 한 그루 심고 싶다
나무 한 그루 심고 싶다
천둥 번개에 놀라 이리 휘고
눈보라 비바람에 쓸려 저리 휘어진
나무 한 그루 심고 싶다
나이테마다 그날의 상처를 촘촘히 새긴
나무 한 그루 심고 싶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불벼락을 뒤집어쓰고도
모질게 살아 여린 생명 키워내는 선흘리 불칸낭
한때 소와 말과 사람이 살았던
지금은 대숲 사이로 스산한 바람만 지나는
동광리 무등이왓 초입
등에 지고 가슴에 안고 어깨에 올려
푸르른 것들을 어르고 달래는 팽나무 같은
나무 한 그루 심고 싶다
허리에 박혀 살점이 된 총탄마저 보듬어 안고
대창에 찔려 옹이가 된 상처마저 혀로 핥고
봄이면 어김없이 새순 틔워 뭇새들 부르는
여름이면 늙수그레한 이에게 서늘한 그늘이 되는
나무 한 그루 심고 싶다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 푸르고 푸른
나무 한 그루 심고 싶다
내일의 바람을 열려 맞는 항쟁의 마을 어귀에
아득한 별의 마음을 노래하는 나무 한 그루 심고 싶다

♧ 참척
참으로 끔찍한 일이다
어리고 여린 목숨 가슴에 묻은
그 어미 아비가 흘려야 할 피눈물은
눈에 흙이 들어가도
그 흙이 썩어 문드러져
흔적조차 남지 않은 심장을 찌르고
폐부를 찌르고 손톱을 찌르고 머리카락을 찌르고
다시 피눈물을 찌르고
고통의 무게와 절망의 깊이는
변수가 아닌 영원한 상수여서
바람 불고 눈비 오고 해가 뜨고 달이 져도
차마 눈 붙일 수 없어서 마실 수도 먹을 수도 없어서
온몸이 무너져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서
두려운 일이다
서러운 일이다
난 여기 망실하게 있는데
넌 내 곁에 영영 올 수 없으니
새순 돋고 유채꽃 피어도 서럽다
하늘빛보다 서럽고 바다 끝보다 더 서럽다
죽어 다시 죽을 만큼 끔찍한 일이다

♧ 영원한 홍보부장
광주 시민군 항쟁지도부 홍보부장은
윤상원과 함께 들불야학 선생을 하면서
노동자들과 연극 작업을 한다
그 전에 이미 <함평 고구마> <돼지풀이>에 참여했다
광주 시민군 항쟁지도부 홍보부장은
극단 광대를 창단하고
황석영의 「한씨 연대기」를 연습하던 중
오월을 만나 광대 식구들과 항쟁에 투신
투사회보제작, 문화선전, 도청앞 궐기대회를 치른다
광주 시민군 항쟁지도부 홍보부장은
20개월 수배 끝에 잡혔다 풀려나 극단 토박이를 창단
<금희의 오월> <모란꽃> <청실홍실> 등의 제작에 참여
윤상원상, 민족예술상을 받는다
광주 시민군 항쟁지도부 홍보부장은
오월 비디오 영화 <RED BRICK>를 제작하다
지병이 도져 일구구팔년 구월 마흔넷의 삶을 접는다
영원한 홍보부장, 그 이름은 박효선이다

♧ 부전여전
1
1970년 12월 15일 새벽 1시 30분경 제주도 성산포항을 떠나 부산으로 항해 중이던 정기여객선 남영호가 거문도 동쪽 33마일 해상에서 침몰, 319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사고로 임검 경찰관 4명이 직무유기 혐의로 구속되고 서귀 포경찰서장을 입건하는 것으로 사건이 마무리되었다. 박통 시절이었다.
2
2014년 4월 15일 인천연안여객터미널을 출발,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4월 16일 오전 8시 50분경 전남 진도군 관매도 부근 해상에서 침몰, 수학여행길에 오른 단원고 학생 246명을 포함 295명이 목숨을 잃었다. 세월호에 대한 수색은 같은 해 11월 11일 서둘러 종료되었으며 9명의 생사는 아직도 확인된 바 없다. 박그네 시절이었다.

♧ 레 지 투이, 혹은 반레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그는 통일전쟁에 자진 참여한다
호치민루트 타고 남으로 내려 와
사이공 남부에서 십년간 미군과 싸운다
전쟁이 승리로 끝났을 때
함께 입대한 삼백 명 중 살아남은 자는
그를 포함 다섯 명뿐
시인을 꿈꾸다 전사한 반레라는 동지의 이름으로
시를 쓰고 소설을 쓰고
못 다한 이야기는 필름에 담으며
남은 삶을 산다
무장 게릴라였던 레 지 투이는
동지의 이름, 반레*로 산다
---
* 반레 시인 또한 2020년 9월 6일 7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김수열 시집 『날혼』(삶창시선, 2025)에서
*사진 : 요즘 한창인 '잠자리난초' 꽃

'아름다운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김종호 시집 '강나루의 대화'의 시(6) (4) | 2025.08.06 |
|---|---|
| 계간 '제주작가' 여름호의 시(1) (8) | 2025.08.05 |
| 김항신 디카시집 '길을 묻다'의 시(13) (4) | 2025.08.03 |
| 월간 '우리詩' 7월호의 시(완) (7) | 2025.08.02 |
| 문순자 시조집 '가끔 섬으로 돌아가 울고 싶을 때가 있다'(6) (6) | 2025.07.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