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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김종호 시집 '강나루의 대화'의 시(6)

by 김창집1 2025. 8. 6.

 

 

망명자

 

어느 별에서

벌똥별처럼 떨어졌을까

밤마다 땀을 흘리며

그리움을 따라 헤매다 온다

 

낡은 길 익숙한 풍경인데

낯설고 서투르다

우두커니 서서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날 저물어

일찍 나온 별 하나

글썽이는 기억의 저편

그리움이 머무는 곳으로

오늘도 길을 떠나고 있다

 

 


 

종점

 

 

270번 버스는

제주대학과 애월을 오가는 유일한 노선이다

정기적으로 대학병원을 찾아야 하는 내게는 고마운 일

출발 시간과 도착지가 확실한 버스는 행복하다

고뇌도 없이 무장 달리기만 하면 되지만

병원을 오가는 450분에 내가 다 지나갈 것이다

종점에 내려서 우두커니 하늘을 본다

사람들은 서둘러 걸음을 재촉하고

종점이 시점이 되는 것은 묘하다

후회하면서 다시 시작하면

후회 없는 인생이 될까

돌아가는 길은 돌아보는 길

종점에 서면 왜 쓸쓸해지는가

한낮 햇살이 좋더니 별빛이 쏟아진다

오늘도 덤으로 내리신 하루

한 줌 바람이 이마에 산뜻하다

 

 


 

고내오름 오르는 길은

 

 

줄곧 걸어온 길이

저 밀리 가물거리고

언덕을 몇 개를 더 오르면

내일, 너를 만날 수 있을까

 

새벽을 걸어

날마다 오름을 오르면서

산마루에서 숨 한 번 돌려 쉬고

오를수록 빈 하늘이 무겁다

 

남녘으로 유순한 능선 따라

먼저 떠난 자들의 총총한 무덤들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으신지

잠들지 못한 사연들이 빵빵하다

 

산정에 서면

처음처럼 신선한 바람과

시야 가득 열리는 하늘

동녘을 태우며 오르는 해

아침을 여는 새들이 맑다.

 

한 아름 하늘을 품고

터덜터덜 내려오는 길

수평선은 완고하고

밤샘 조업으로 고단한 불빛들

만성피로를 싣고 귀항하고 있다.

오늘도 만선기는 할 일이 없다.

 

 

 

 

 끝없는 연주

 

 

숲에서는 귀를 열어놓고 잠잠할 일이다

풀잎 새에서 풀잎으로나 흔들릴 일이다

 

하늘이 흐르고

바람이 흐르고

강물이 흐르고

 

숲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

지휘자는 보이지 않고

저마다 제 색깔과 제 곡조로

시작도 끝도 없이 흐르고 있다

 

햇살 쏟아지는 금빛 트럼펫과

바람을 뜯어 지치는 현의 흐느낌

들판을 재우쳐 가는 억새의 출렁임과

풀잎 끝에 새벽이슬의 눈부심

숲은 태초의 묵시로 깊어지고,

뭇 생명은 그 깊음으로 노래한다

산속을 깨뜨리는 딱따구리의 목탁 소리와

탁란, 그 엇사랑을 슬퍼하는 뻐꾸기와

숲을 끌고 가는 휘파람새의 청량한 휘파람과

천방지축 송아지를 부르는 암소의 누런 울음과

팽나무 그늘에서 모래를 뿌려대는 참새 떼거리와

계절의 끝으로 자지러드는 매미는 목이 쉬고

섬돌 밑에서 밤을 새는 귀뚜라미의

그 파란 달빛이 가슴에 젖어든다

 

숲에서는 귀를 열고 잠잠할 일이다

풀잎 새에서 풀잎으로나 흔들릴 일이다

 

 

                          *김종호 시집 강나루의 대화(푸른생각, 2025)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