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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월간 '우리詩' 8월호의 시(1)

by 김창집1 2025. 8. 21.

*해오라비난초

 

 

무릎 꿇은 나무

 

 

무릎을 꿇는다는 건

굴복이 아니라

나를 살리는 일

낮추어야 산다

혹독한 시련 속에서

엎드린 날이 길수록

단단해지는 몸뚱어리

이것은 영원히 사는 길

오래오래 몸 세우는 일

로키산맥 해발 삼천 미터

수목한계선에서는

몸뚱어리 단단한 바이올린이

천상의 선율을 기르고 있다

 

 


 

흰동고비 - 정지원

 

 

루시즘

저 경이驚異

희디흰 아름다운 자태

내 마음 끌어당긴다

 

먼 과거의 기억 더듬으며

내가 그 길을 걷는다

 

지난 것은

이제 가슴에

조용히 자리 잡고,

 

그러 날들

다 나의 일부일 뿐

 

지나갈 것 다 지나가면

또 다른 길이 열린다는 것

 

흰동고비도

곧 제 길 떠나겠지만

함께 하는

간절한 지금

 

 


 

조문弔問 - 차영호

 

 

 자클린의 눈물*

 모바일로 듣는다

 

 그대 좋아했을 노랫가락 한 중

 귀에 담아 두지 못하였으니

 골라잡은 무작정이다

 

 우리 공유한 구름장이나 밭 한 뙈기, 홑이불 한 조각, 숟가락 따위 아예 없다 해도 앞 개울은 여전하게 돌벼랑 물그림자를 납작 보리쌀 일 듯 일렁일렁

 자클린의 눈물이 되어 흐르고

 나는 비를 맞는다

 

 빗줄기 속에는

 그대가 상재한 시집 두 권이 젖고

 그대 손수 내 이름자를 새겨 준 수제 볼펜이며, 용수철 끝 헝겊 올빼미까지 까닥까닥……

 터널이 끝나는 곳까지

 쏟아져 내리려나?

 

 고비고비 고비마다 고비 순같이 고부라진 고샅을 고샅고샅 흐르다가 소에 머무르지도 못하고 금세

 버력더미 틈새로 스며든다고 해도

 눈물은

 눈물

 

 어디에서 다비 되고 파쇄되어

 어디로 흐트러질지라도……

 

 안녕,

 

 저녁 햇살 눈시울 붉힌 산방 다락茶樂 찻상 위에

 밑반찬처럼 올려져 있을 연꽃

 금잔

 다시금 차 담뿍 찰랑여도 함구하겠지

 

 ……어디 가려고 그대

 빙그레 웃고 나섰는지 이미

 알고 있었음을

 

 비안개 자옥한 울타리 돌고 돌아

 괴불나무 괴불 등 내건 자드락길 그 너머 너머까지

 흐늘흐늘 흐늘거리는

 어둠 속에서

 

 


 

마우스 - 최경은

 

 

컴퓨터를 부팅하는 동안

바빠진 마음이 화면을 응시한다

 

심해어의 눈동자처럼 커서가 깜박인다

 

화면 속에서

화면 밖으로 넘쳐 나는 기사들

글자 크기를 키우려다 잘못 불러들인 광고들

 

그물망처럼 연결된 링크 속으로 접어들면

내가 주인인지

마우스가 주인인지 알 수 없다

 

클릭클릭클릭

 

최면에 걸린 듯

무한한 방향으로 이동 중이다

 

공간을 복제하는

공간의 세계

 

고립에서 벗어나면 그 즉시 고립이 나를 깨문다

나는 왜 더욱 더 고립무원이 되려는 것일까

 

이걸 알아차리는 순간

알고리즘이 넓어진다

 

연결과 연결 고리가 만든 사슬이 견고하다

 

묶이지 않은 채

난 영원히 묶여 있다

 

 


 

참회록 - 황현중

 

 

나는 많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고개 들면 하늘에 부끄럽고

고개 숙이면 낮은 곳에 떳떳하지 못합니다

나 하나로 전부인 내 안에서

욕심껏 무사한 날들을 살았습니다

내가 흘린 눈물은 나를 위해 다 써 버리고

부평초 한 잎 뿌리 내릴 웅덩이조차 없이

눈 덮인 고원에 홀로 곤두서서

온몸을 비틀고 있습니다

사람을 떠나보내고 다시 사람이 그립습니다

캄캄한 내 영혼의 어둠 속으로

촛불을 받들고 오는

따뜻한 친구들의 발자국 소리가 들립니다

세상에서 가장 착한 친구는

앞 못 보고 걷지 못하는 사람을 등에 업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친구는

자신의 몸을 살라 어둠을 밝히고

이 세상에 없으나 우리 곁에 영원히 있습니다

착하고 아름다운 세상의 친구들과 함께

다시 고쳐 살고 싶습니다

얼음장 밑 봄의 울음에

다시 귀 기울이고 싶습니다

 

 

                  * 월간 우리8월호(통권 제446)에서

                          *사진 : 요즘 한창인 '해오라비난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