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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월간 '우리詩' 8월호의 시(2)

by 김창집1 2025. 8. 22.

*붉은사철란

 

 

탈출기 김성중

 

 

앤디*,

태평양 바닷가

파란 바닷물 넘실대는

지와타네호로 갈까?

 

앤디,

20년 동안

자유를 찾으려고

억울함을 풀려고

참고 또 참았지.

 

앤디,

무서움은 너의 의지

피가로의 결혼 편지이중창을 틀고

미녀의 사진으로 위장하고

작은 망치 하나로

두터운 감옥 벽을 뚫었지.

 

앤디,

너의 소망은

거짓과 위선과 음모를 벗어나

바다의 음악을 듣는 자유였어.

 

---

* 스티븐 킹 원작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누명을 쓰고 쇼생크 교도소에 갇혔다가 탈옥한 은행원 앤디 듀프레인.

 

 


 

더하기 없는 어제 그리고 오늘 - 김정옥

 

 

너도 없고 엄마도 없는

어제 그리고 오늘, 내일

 

빼기로 비어 가는 나날

너랑 가던 식당과 카페를 빼고

엄마랑 갔던 공원으로

발걸음을 내딛지 못하고

 

갈 곳 많던 내 고향 산천에

갈 수 있는 장소가 없다

 

더할 수 있는 얼굴 하나 없이

 

너랑 웃음꽃 피우던 창가 자리가

퇴색해 가는 그림처럼

먼지만 쌓여 간다

엄마가 찾기 쉽게 빨간 옷을 입은 몸으로

그냥 펑퍼짐하게 앉아만 있다

 

다섯 살이 다 되도록

아직 신생아 티를 벗지 못한 채

앉은 자리에 덩그러니

 

 


 

와디 김혜천

 

 

쩍쩍 갈라진 건조한 바닥을 지나

초록이 숨어 있는 숲에 닿으면

온몸 담글 수 있는 푸르디푸른

 

와디

 

결핍의 등을 타고 지구별에 떨어진 청개구리

어디로 튀어야 물 댄 논에 닿을까

울어 댈수록 튀어나오는 눈

 

부드럽고 소박한 향기 있는 물

 

변신의 능한 보호색은

생존을 위한 수단일 뿐

 

도로를 횡단하여

멀리 가기 위해서 손잡을 줄 아는 몽상가

개구리 합창이 고요를 깨운다

 

까만 밤 합창으로 우주를 흔들면

비가 내리고

총총거리던 별들마저 쏟아져 몸을 담그는

 

 


 

숙명 나병춘

 

 

나의 말은

나비 날개에 실려 날아간다

어느 꽃에 앉을까

살그머니 내다본다

 

개망초 꽃에 앉았다

노랑꽃창포에 앉았다

갓 피어난 함박꽃에게로 날아간다

너훌너훌 꽃향기 꿀이 되어

꽃구름 속으로 비상한다

 

나의 말은 바람이 되고 싶었을까

구름이나 안개가 되고 싶었을까

안개는 햇살이 되어

시냇가에 졸졸 흐르다

문득, 꽃잎으로 흩날리더니

나뭇잎 배 타고 날아간다

 

나의 말은 흩어지고

또 흩어지다

나비가 되고 바람이 되고

회오리 구름 되어 동동

노을 속으로 사라진다

 

사라진다는 것

나의 언어의 숙명이다

어느 꽃으로 피어날까

혹은 어느 별자리로

어느 느낌표로?

 

 


 

이팝꽃 지는 마을에서 남대희

 

 

꽃은 저 홀로

먼 산을 데려오고

 

꽃그늘 아래서

그리움을 본다

 

꽃 흐드러진

고요한 마을 어귀

 

피었다 지는 일이

이토록 순한 슬픔인 줄

 

꽃은 조용하고

햇살도 숨죽이는

 

떨어지는 꽃잎 위로

작은 새가 날아오를 때

 

꽃은 제 그림자를

가만히 내려놓는다

 

지금은 누구라도

잠시 흰 바람으로 머물러도 좋겠다

 

바람이 지나간 자리

마을의 계절이

하얗게 흔들리고 있다

 

 

                                               *월간 우리8월호(통권 제446)에서

                                                               *사진 : 붉은사철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