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느 봄날 오후
오늘은 영이랑 달자랑 와산마을
산비탈을 찾았다
밭두렁에서 호미자루 들고
갈래머리 길게 자란
달래를 켜며 땋음머리 올리듯
돌돌 말아 손에 들고
폴폴 날리는 벚꽃잎 바람결에
기지개 켜며 자란 쑥을
캐어 놓은 바구니에
머위잎도 뜯어 놓는다
영이는 안개 속 오리무중 잠시 후
해해해 웃으며
남편이 좋아한다며 한 움큼 두릅
펼쳐 보인다
우리는 서로의 입에 새참을 넣으며
어미새가 된다
블랙커피로 달래던
목울대 아픈 지난날들의 시간
서로가 마주보며 젖은 눈에
눈부처로 서 있다
안개가 산그림자 데리고 놀다 가는
해질녘
새들이 지저귀며 발길을 재촉하고
쫑알거리던 풀꽃 잎도 어느새
엄마 품에 안긴다

♧ 냉이꽃
유난히
얼굴 뺨 비벼 대주던
이제 네 이름만으로도
차마 다가설 수 없구나
어머니
냉이 된장국 한 그릇 더 주세요
해마다 냉동고 안에는
켜켜이 봄 냉이 쌓아 두면서
시리도록
가슴에만 피는 꽃

♧ 봄까치꽃
언제 왔니
벨 누르지 않고
그래 맞아
아무도 없었어
메모 적어 둘까 하다
따사로운 햇살 바람결에
땡그랑 문지방
아기종 치고 말았어

♧ 제비꽃
한줌 흙에서
몰래 울었을지도 모르겠다
새벽 이슬비에 목축이며
달그림자 그늘 아래
그리우면 더 높은 별빛 보며
떠난 자리에 숨결로 남아
이토록 눈물 나도록 기쁜
너의 주소지는 눈빛 머무는 이곳

♧ 칸나 꽂길 걸으며
어린 시절 초가집 뒤란
장독대 벗 삼아 피어 있었지
잠결에 듣는
이른 아침 장독 여는 소리
햇살 잘 들이기 위하여
어머니가 열어 놓은 뚜껑
후드득 빗소리를 크게 내곤 하지
그동안 배운 인생
아이는 장독을 닫았지
비 그치면 다시 열어 놓고
장난치듯 날 놀리던 그 비
어른이 된 후 여우비란 걸 알았지
칸나는 달래주었지
꽃잎에 물방울 달고
젖지 말라고 대신 울어 주었지
나는 혼자 텅 빈 하루
해질녘에 오실 어머니 젖가슴 그리며
머루 같은 까만 눈동자만 굴렸지
도시 한복판 아스팔트
그 인도 칸나 꽃길 걷고 있지
점점이 멀어진 어린 시절 그 칸나
이 길가로 돌아온 것 같네
*강윤심 시집 『속울음으로 꽃망울 맺고』(한그루, 2025)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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