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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월간 '우리詩' 8월호의 시(3)

by 김창집1 2025. 8. 24.

*여름새우란

 

 

제주, 위대하고 견고한 성이여 목경희

 

 

불에 그슬린 검은 돌 사이로

시절 따라 웃고 울던 비바리

한라산 자락에 머리카락 풀고 누워 있다

 

해변 따라 알 수 없는 발자국 무성하고

철썩이며 밀려온 파도 따라

그리움도 천천히 바닥에 가라앉는다

백마처럼 달려온 하안 구름은

섬보다 먼저 아침을 열어젖힌다

 

거센 바람에 휘청거렸던 섬

높은 물결에 쓸려 가지 않고

긴 세월 견디며

푸른 하늘 아래 우뚝 솟아 있다

 

단단하게, 그리고 찬란하게!

 

 


 

처서處暑 장대비 박부민

 

 

대단원의 시작이다

 

스타카토, 크레센도, 포르티시모

 

휘몰아치는

 

빗발의 피아노 합주

 

가을을 급히 들이려다 들킨

 

반란

 

모두 쿵쿵 기립하여

 

푸른 피눈물로 곧게 서는

 

여름 목숨들의 단말마

 

 


 

바닷속 얼굴들 백수인

    - 수장水葬

 

 

 새벽, 수문포 앞바다

 어슴푸레한 수면 위로

 얼굴들이 등등 떠오르네

 깜짝 놀라 온몸에 소름이 돋네

 

  1950년 전쟁이 터지자 빨갱이로 낙인찍은 마흔다섯 명, 721일 자정 무렵 트럭에 실려 수문포 바다로 향했네 탕수배기골짜기 지날 때 탈출하던 아홉 명은 그 자리에서 총소리에 휩쓸려 하늘로 흩어졌네 남은 이들은 돌과 함께 철삿줄로 꽁꽁 묶여 저 바다에 던져졌네 그 젊은 얼굴들 말없이, 깊이 가라앉았네

 

 스물다섯의 젊은 아내

 여섯 살 아들, 세 살배기 딸을 남기고

 역사의 바닷속으로 가라앉은 사람

 시신도 없이 빈 관을 놓고 장례를 치르네

 분노도 두려움도 저물었고

 울음마저 마르고 사그라졌네

 

 어둠이 내리면

 바닷속 깊이 잠겨 있던 그때의 얼굴들이

 저렇게 수면 위로 올라와

 둥실둥실 떠도는 것인가

 

 바닷속 얼굴들

 

 


 

모래알갱이 성숙옥

 

 

오래 만나지 못한 일이 비와 섞이면

나는 비에 젖은 유리창처럼 흐려진다

빗방울이 떨구는 푸른 음이

아무도 듣지 않는 혼잣말 속에 흘러온다

나무들이 흔드는 비의 소리들

나뭇잎 사이 그대가 있을 것만 같아

나는 밖으로 간다

하지만 내가 찾는 모습은 없고

그리움의 쉰 소리만 귀를 긁는다

그것은 마른 기억이 비에 젖어 불려진 까닭인가

발등을 적시는 흙탕물이 말한다

어제의 사무치던 일이나 오랜 기다림도

세월의 물에 씻기다 보면

모래 알갱이 된다며

남은 마음에 얼룩을 뿌린다

 

 


 

무위사 이학균

 

 

고목으로 길을 가리지 않았다

전각으로 눈을 현혹하지 않는다

 

마을 고개에 서면 눈이 환해지는 고향처럼

여린 햇살 아래 무심하게 엎드린 지붕들이 다정하다

 

월출산 골짜기가 생길 때부터

그곳에 늘 있었던 것처럼

 

애써 꾸미지도 않고

굳이 감추지도 않은 달빛 같은 풍경

 

텅 비어 있는 듯하여 다가가면

우주를 품은 아이처럼 깊은 이야기 들려준다.

 

 

               *월간 우리8월호(통권 제446)에서

                                  *사진 : 여름새우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