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바닷가 그집
태홍리 집에 가면 늘 바다 냄새가 났다
돌문어 삶은 냄새 우럭 비늘 냄새 전복 껍질 마른 냄새
물질하고 돌아온 고모의 냄새
코끝으로 밀려오는 냄새가 싫어
차 안에 웅크리고 앉은 나를
형은 당겨 내리며 말했다
우리는 바다에서 태어나는 거야
방문 너머 비릿한 냄새 사이
동생들을 끌고 불타는 가시리를 떠나
바닷가로 내려온 고모
타들어가는 가슴에 끼얹은 파도 소리
수십 년의 시간을 넘어 밀려오는
불면과 통증의 파도 소리
형과 내가 나란히 누워 보내는 밤
바다를 보고 싶었어
파도 속에서 일어나는 꿈들을 보고 싶었어
형은 말했지
우리의 꿈들은 바다 깊은 자리에 가라앉아 있는 거라고
바다로 돌아간 사람들이 안고 간 거라고
태풍이 몰아치는 날
바다를 가보고 싶었어
거대한 파도를 타고 온 꿈들이
땅을 밟고 올라오는 꿈을 꾸었지
두런두런 시간 속에 묻힌 이야기들로
밤새 뒤척이다가 새벽녘 잠들던
다시 돌아간 그 집
바다로 돌아간 고모의 냄새가 났다

♧ 어둑시니*
소개령이 끝나고 섬에 생기가 돌아오는 봄날 고림동 돌성에 어둠이 내리자 멀리서 들리는 소리 나뭇가지가 꺾이며 누군가 다가오는 소리 경비 망루에서 바라보는 열다섯 소년의 눈이 커지고 몸이 오그라드는데 어둠의 근본이 마을을 향해 다가오네 마을 사람들을 깨워야 하는데 부스럭부스럭 들려오는 녹다 만 눈을 밟는 소리 소년의 손에 쥔 죽창이 다닥다닥 떨리는 소리 다가오는 어둑시니는 바라보면 볼수록 거대해져 기는데 소년이 마을을 지키기 위해 배에 힘을 주고 지르는 고함소리 마을 사람들이 놀라 집에서 통시에서 대기소에서 뛰쳐나오는 소리 아래로부터 솟아오르는 용기에 성 밑을 바라보는데 내려다보면 볼수록 어둑시니는 작아져 동글동글하게 뭉쳐지네 다가올수록 작은 형상이 되어 넝마 같은 갈중이를 걸친 아이가 올려다보네 배가 고파서 산을 내려왔다는 아이가 소년을 바라보네 어둑시니를 이긴 소년의 손에 힘이 빠지고 죽창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 산을 내려온 아이가 지쳐 흙밭에 풀썩 주저앉는 소리 소년은 망루에서 내려와 아이에게 달려가 업네
---
*한국 민담 요괴, 요정의 일종.

♧ 과거에 묻힌 이름
섬에
폭설이 그친 날
산쪽 아이들과 바다쪽 아이들이
각명비를 사이에 두고
눈싸움을 한다
뒤에 숨은 산아이들이
눈송이를 뭉치는 동안 각명비는
방패가 되어준다
쏟아지는
눈의 총탄들
하얗게 묻히는 각명비 위로
겨울 햇살이 비춘다
눈이 녹아 흘러내리자
과거에 묻힌 이름들이
솟아나 운다

♧ 금능바다를 바라보아요
돌탑 위에 앉아 있어요
늘 바다를 바라보는 자리
검은 날개를 퍼덕여보다가
슬그머니 접어넣어요
온몸이 거멓게 변해버린 건
산에 핀 불꽃 때문이 아니라
기다림의 세월이 길어서일까요
바다 너머로 날아오를 날들
숨죽여 기다리다
등 굽은 채로 앉아 굳어버렸어요
새날을 꿈꾸는 건
멈춰버린 심장을 두드리는 일
날아가는 꿈은
육신을 새로 만드는 일
돌탑 위에 앉아 늘 꿈을 꿔요
그리하여
검은 날개를 가진 채
바다를 항해 돌아앉아 굳어버린
잊힌 섬의 기억들

♧ 바퀴 없는 자전거
자전거를 타고 싶어
페달을 돌리면
붕 하고 떠오르는 자전거
어릴 적 놀던 동네 뒤
연못 위로 날아가 보고파
서서 보던 영화 E.T 주인공처럼
설레게 하던 중앙로 현대극장 자리
그 위로 날아가 보고파
자전거를 배우지 못해
바퀴 달린 자전거가 싫어
날아가는 자전거를 갖고 싶었어
하늘로 날아가다 보이는
어린 날들이 부서지고 흩어져
희미해진 공간
비 온 다음날
흐르는 물가에서 놀던 아이들
빨래하던 아주머니들
모두 사라지고 없는
메마른 병문천
아스콘과 콘크리트로 덮여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기 전
한 번즈음 사람냄새 풍기던
어린 날로 돌아가고파
쇼핑앱에서
바퀴 없는 자전거를 검색한다
*오광석 시집 『귓속의 이야기』(도서출판 북인, 2025)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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