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부재
반팔에 셔츠 하나 가법게 걸친 가을
간다 온단 말도 없이 홀연히 사라졌다
한라산 첫눈 왔다고
호들갑 떠는 사이

♧ 비문증
폭설 따라왔으니 눈 녹으면 갈 것이다
일주일에 사나흘 출근하는 새별오름
눈떠도, 눈을 감아도
아지랑이 같은 그것
그랬다, 영락없이 내 사랑도 그랬다
협착증 골다공증 그 다음 온 비문증
못다쓴 내 시의 행간
뫼비우스의 띠로 돈다
‘COVID-19 OUT’ 들불축제 슬로건처럼
역병도 그리움도 제물인 양 바치면
오늘 밤 세상의 소원,
그게 축제 아닌가

♧ 엄쟁이 식겟날
배고픈 달이 떴다
오늘은 아버지 기일
제상도 본숭만숭 열 살 또래 소나놈덜
우르르 밀려갔다가 우르르 밀려온다
가위바위보 그 속에 순경 폭도 있었다
장난 끝에 숭시날까 좌불안석 어미니
기어이 외양간에 숨은 아들을 끌고 온다
초엿새 달도 지쳐 녹초가 될 그즈음
“일어낭 식게 먹으라” 애들 잠을 흔든다
적고지 떡 돗궤기적도
크다 족다 아귀다툼
울담너머 우알녘집 떡차롱 돌리고 나면
그제서야 밤바다 불빛들 재우시나
올레 끝 술 한잔 걸친
파도 소리 다녀간다

♧ 파쇄
전정 끝난 감귤밭에 보무당당 점 령군처 럼
귀먹먹 파쇄기 소리 봄날을 관통한다
타타탓 타타탓탓탓 네 탓이다 지목하듯

♧ 감귤밭 멀구슬나무
머들 위에 있다고 안심하긴 이르다
“아무래도 우듬지 손대는 게 좋겠어”
울타리 칡넝쿨 걷던
남편이 한소리 한다
이태 전 마이삭이 한쪽 어깰 채가고
그때 남은 반쪽이 눈엣가시 같은데
까치와 바람까마귀
자리다툼 하는 쉼터
사다리는커녕 중장비도 댈 수 없는
장대톱도 없으면서 번지르르한 말펀치
그 불똥 태풍 또 오면
어디로 튈까 몰라
*문순자 시조집 『가끔 섬으로 돌아가 울고 싶을 때가 있다』(작가, 2025)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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