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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문순자 시조집 '가끔 섬으로 돌아가 울고 싶을 때가 있다'(7)

by 김창집1 2025. 8. 26.

 

 

부재

 

 

반팔에 셔츠 하나 가법게 걸친 가을

간다 온단 말도 없이 홀연히 사라졌다

한라산 첫눈 왔다고

호들갑 떠는 사이

 

 


 

비문증

 

 

폭설 따라왔으니 눈 녹으면 갈 것이다

일주일에 사나흘 출근하는 새별오름

눈떠도, 눈을 감아도

아지랑이 같은 그것

 

그랬다, 영락없이 내 사랑도 그랬다

협착증 골다공증 그 다음 온 비문증

못다쓴 내 시의 행간

뫼비우스의 띠로 돈다

 

‘COVID-19 OUT’ 들불축제 슬로건처럼

역병도 그리움도 제물인 양 바치면

오늘 밤 세상의 소원,

그게 축제 아닌가

 

 


 

엄쟁이 식겟날

 

 

배고픈 달이 떴다

오늘은 아버지 기일

제상도 본숭만숭 열 살 또래 소나놈덜

우르르 밀려갔다가 우르르 밀려온다

 

가위바위보 그 속에 순경 폭도 있었다

장난 끝에 숭시날까 좌불안석 어미니

기어이 외양간에 숨은 아들을 끌고 온다

 

초엿새 달도 지쳐 녹초가 될 그즈음

일어낭 식게 먹으라애들 잠을 흔든다

적고지 떡 돗궤기적도

크다 족다 아귀다툼

 

울담너머 우알녘집 떡차롱 돌리고 나면

그제서야 밤바다 불빛들 재우시나

올레 끝 술 한잔 걸친

파도 소리 다녀간다

 

 


 

파쇄

 

 

전정 끝난 감귤밭에 보무당당 점 령군처 럼

 

귀먹먹 파쇄기 소리 봄날을 관통한다

 

타타탓 타타탓탓탓 네 탓이다 지목하듯

 

 


 

감귤밭 멀구슬나무

 

 

머들 위에 있다고 안심하긴 이르다

 

아무래도 우듬지 손대는 게 좋겠어

 

울타리 칡넝쿨 걷던

남편이 한소리 한다

 

이태 전 마이삭이 한쪽 어깰 채가고

 

그때 남은 반쪽이 눈엣가시 같은데

 

까치와 바람까마귀

자리다툼 하는 쉼터

 

사다리는커녕 중장비도 댈 수 없는

 

장대톱도 없으면서 번지르르한 말펀치

 

그 불똥 태풍 또 오면

어디로 튈까 몰라

 

 

          *문순자 시조집 가끔 섬으로 돌아가 울고 싶을 때가 있다(작가, 2025)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