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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월간 '우리詩' 8월호의 시(4)

by 김창집1 2025. 8. 27.

*히말라야 산들

 

 

당신의 색 신호철

 

 

자기만의 색깔을 갖는다는 것은

수천 수만의 펜톤 칼라로도 설명할 수 없지

꽃의 색, 잎의 색, 하늘의 색,

바다의 색, 모두 사람들의 색 모두

오랜 시간을 인내한 후 가지게 된다는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어 볼 때

나의 색이 아닌 당신의 색으로 보여진다는

비로소 당신의 삶이, 오래 견디어 낸

아픔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천 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 년 같은

슬픔에도 없는 이별의 공식을

당신의 색으로 지울 수 있다는

 

 


 

시대의 무관심의 변 유명선

 

 

익명의 소시민으로 사는 거

우리의 심장은 너무 작아서

일정량 이상은 버거워

언제나 시대는 역사적인 거고

들여다보면 무의미한 존재는 없다잖아

조용하고 사적이며 일상에 충실하기

자연에 순응하며 사는 게 답이야

(그 자연을 무참히 파괴하는 시간들은?)

어차피 피조물들의 세상이라

공감 능력까지도 구분되는 시대에

무엇에 열광한다는 것은 과거의 잔재

우리는 끊임없이 생성되는 새로운 소식을 소비할 뿐

계절만이 영속적인 거 아니겠어?

피로한 상상력 원치 않아

어차피 세상은 연민을 느낄 여력이 남아 있지 않지

 

그래도 봄이 빨리 왔으면 좋겠어

꽃구경 가게

 

 


 

밤그네 유정남

 

 

밤의 놀이터에

그네 타는

실루엣

하나

 

하루를 밀고 온 옷차림 분명한데

더 밀어야 할 것이 있는지

천천히 어둠을 밀어내고 있다

 

놀이도 안락도 모른 채

공중에서

흔들리고 있다

 

콘크리트 숲에는

꺼지지 못하는 별

 

종일 쏘다니다 집을 잃어버린 사람이

허공 그네를 찾아오고

 

물을 다 마실 동안

훔쳐보는

유리창의 시간

 

바람도 없는 흔들림에

몸을 맡긴 사람은

달까지 갔다 돌아오곤 한다

 

졸고 있는 풍향계

공기가 부풀어 오른다

 

야간 경비원 손전등 불빛이 어둠을 밀며 지나간다

 

 


 

모기장 고쳐 달기 이범철

 

 

때로 슬픔이

감자처럼 알이 굵어서

촘촘한 모기장을 통해서는

들어오지 않았으면 좋겠어

모기장을 닫으면 어둠도

그 올에 걸려 창밖에 쌓이고

내 안엔 뽀안 안개만 피었으면 좋겠어

 

어떤 다족류처럼 밖에서

기웃 기웃대다 몸에 붙은 발들 일제히 돌려

내게서 나가 주지 않을래

그렇게 겨울 떠나게 되면 봄이

좀 길어지겠지

두꺼운 추위의 겨울바람들도 모기장 밖에서 떨다가

되돌아가고 있어 모기들처럼,

이제 고것들 창문 아래 우수수 떨어지면 좋겠어

잎 고운 빗자루 들고 아침에 나가

밤새 머리맡에 쏟아진 못난 생각 쓸어 담듯

어두운 바람의 알갱이들 쓸어 담는 날이

내일이었으면 좋겠어

때로 시간이 모기장 같았으면 좋겠어

 

 


 

백담사 이학균

 

 

단지 작은 나룻배가 되겠다는

소소한 만해卍海의 집에

잠깐 왔다 간 일해日海의 발자국이

화엄실 댓돌 위에 어지럽다

 

만해도 일해도 모두 가고 없는 백담계곡

오며가며 들른 사람들의 돌멩이들이 쌓여 기도가 되었다

 

세워지고 불타고

세워지고 불타기를 몇 번

그럴 때마다 절 이름에 죄명 덮어

이름 바꾸기를 또 몇 번

 

가끔 기구한 인생도 있고 아프고 슬픈 인생도 있지

그런 생이 나쁜 건 아니지 잘못된 것도 아니야

 

백담사는 그걸 말하고 싶었던 거야

 

 

                                 *월간 우리8월호(통권 제446)에서

                                               *사진 : 히말라야 산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