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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한희정 시조집 '립스틱 지우는 저녁'의 시조(3)

by 김창집1 2025. 9. 2.

 

 

11월을 읽다

 

 

깊숙이 들어갈수록 풀리지 않는 문제 같던,

균형 잡아 저울질하던 나무들의 무장 해제

세 못 준

빈 등지만의

풀지 못한 화두 같다

 

나목 사이 닿을 듯 말 듯 단풍잎 더욱 붉고

마주한 눈빛조차 늘 그만큼 거리에서

불사른

화려한 죄목,

길은 점점 지워지고

모두 다 비워서야 진정으로 길을 찾네

남은 잎 팔랑거리는 엔딩크레딧 장면위로

11

행간을 읽는다

의미는 묻지 않았다

 

 


 

가지 않는 길

 

 

숨겨둔 일기장처럼 잊어버린 시간이야

 

스텐트 시술에 빼앗긴 막혀버린 혈관이야

 

폐경기 훨씬 지나 온, 혼자 늙는 아쉬움이야

 

불현듯 모함에 걸린 유배의 시간이야

 

쭉 뻗은 대로大路 아래 역사의 상흔이야

 

오일육 아리랑고개 꼬불꼬불 추억이야

 

 


 

압축풀기

 

 

서랍장 맨 아래서

북은 시간 풀려오네

 

올 끊긴 스위트 홈

까마득한 녹의홍상

 

기억력, 암호 없어도

천연덕스럽게 나온다

 

흑백의 저장소엔 포토샵도 가능한지

추억은 앞뒤 없이 엉킨 실 풀리듯이

구순의 상기된 시간 흩어졌다 모였다

 

한 생애 살아온 길이

삼베처럼 거칠어도

 

남은 앙금 선택삭제,

웃자란 행복만 있네

 

극세사 이불 귀퉁이

잘라내기 하고 있다

 

 


 

꽃수세미 심리학

 

 

산다는 게 수행이라면 득도하고도 남겠네

쿨 한척 설거지해도 마음 한쪽 더부룩

맨손에

꽃수세미는

거품 물고 멈췄어

 

비혼주의 딸들에게 손뼉을 쳐야 하나

신세대 며느리는 종이 다른 족속이지

낀 세대

생존의 반란

주체 못할 불꽃은 튀어

 

밥 한술로 삼켜보는 목에 걸린 가시처럼

시도 때도 없이 살아나는 그 아픈 한마디는

지금껏

뽀득뽀득 닦아

시가 되고 있었어

 

 


 

에로티시즘에 대한 물음

   -클림트 키스앞에서

 

 

그대 사랑은 무엇으로 재나요?

사랑의 단위는 무게 인가요 부피 인가요

옷가지 금박에 눌린, 사랑의 증표인가요

 

진심은 꼭 재어주세요 그 표정은 뭔가요

벼랑 끝 움켜잡은 발부리의 힘을 봐요

서로 꽉 붙들어 있어도 두려움은 뭔가요

 

짐짓 위선인가요 확증은 필요하겠죠

통점은 돌고 돌아요 애증의 파동인가요

빈가슴 의연해져요 따뜻한 심장 채워요

 

 

    *한희정 시조집 립스틱 지우는 저녁(목언예원, 2025)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