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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월간 '우리詩' 8월호의 시(완)

by 김창집1 2025. 9. 6.

 

 

유월의 스케치 임영희

 

 

이른 봄 목련이 다녀가고

복숭아꽃 살구꽃도

무엇에 쫓기듯

엉덩이 붙일 새도 없이

바람처럼 서둘러 다녀갔다

 

게으른 대추나무가

봄바람에 꾸벅꾸벅 졸고

마당가 감나무에서 감꽃이

똑똑 떨어지고 있다

 

팝콘이 톡톡 튈 때처럼

특유의 경쾌한 소리에

마당을 기웃대던 고양이도

궁금하다는 듯 귀를 쫑긋한다

 

순간 흐르던 시간이 멎고

한낮의 고요한 평온이

몰아의 경지로 녹아들고

 

담장 위 덩굴장미는

요염한 얼굴을 들고

푸르디푸른 홑치마 바람으로

호객하는 모습이 아찔하다

 

 


 

수선사 이학균

 

 

국보도 보물도

흔한 지방문화재도 하나 없는

 

눈길 사로잡는 단청도

풍경소리 멀리 들리는 높다란 전각도

 

기와장 속으로 스며드는

시린 새벽 긁는 기침하는 노승도 없지만

 

부처님 외롭지 않을 정도의 대웅전과

수줍게 한쪽 끝으로 물러나 앉은 요사채

 

주지스님이 공양으로 가꾼 푸르른 대웅전 앞마당

싱그럽게 펴진 하늘 한아름과 갓 지은 바람 한 줌

 

발아래 아늑하게 가라앉은 풍경과

멀리 지긋이 눈 감고 옅은 미소 짓는 산들

 

그 어떤 말도 무용하고

감탄사도 그 깊이를 다 담아내지 못하는

 

수선사의 아침

 

 


 

가래의 계절 - 김성중

 

 

강쟁들에 벼가 누렇게 익어가면

강신보 가래는 중력에 이끌려

거침없이 낙하를 감행한다

떨어질 곳을 선택할 수 없는 가래

풀밭에 떨어지면 푹신푹신

물 위에 떨어지면 잠수했다 떠오르고

아스팔트 길이나 시멘트길에 떨어지면

충격으로 껍질을 홀랑 벗고 나신이 되지

바람이 불면 가래가 떨어지고

비가 내리면 가래가 떨어지고

강신보 가래 떨어지는 소리

강쟁들을 건너서 내 귀에 들려오면

자동차 바퀴가 으깨기 전에

나는 새벽같이 수바래로 달려간다

출근길에 가래를 줍기도 하고

점심을 먹기도 전에 강신보로 달려가고 남원 혼불문학관 새암바위에서

시의 샘물이 솟구치기를 기원하다가도

강신보 가래가 부르는 소릴 듣고

숨 가쁘게 달려가기도 했는데

귀여운 가래를 만나는 가을은

날마다 설레는 오티움의 계절이다

 

---

* 오티움 : 라틴어. 은퇴, 유유자적 또는 여가.

 

 


 

한숨 권상진

 

 

1

무쇠솥에 찬물 한 동이 붓고

아궁이에 장작 몇 개 더 밀어 넣으셨다

아랫목에 뉘어진 눈물에 온기가 돌 즈음

한숨 푹 자고 나면 나을 거라 했다

자정 넘도록 통증을 쓰다듬던 빈손이

대책 없는 가계의 어제보다 푸석댔다

한 손은 배를 쓸고

남은 손은 두 사람 눈물을 닦아 내는

도무지 어쩔 도리가 없는 밤

실컷 울고 나면 조금 나아질 거라 했다

 

2

한 손으로 배를 움켜잡고

다른 손으로 베개를 안고 온 아이에게

매실청 한 잔 타서 먹이고

한숨 자고 나면 괜찮아질 거라 말했다

아내는 휴대폰을 다시 만지고

나는 읽던 책을 다시 펼쳐 들었다

오래 멎지 않는 눈물을 곁에 누이고

아내가 응급실을 검색하는 동안

나는 어느 먼 기억을 불러와

통증 위에 가만히 손을 쓸어 본다

 

 



결명 - 고명재

 

 

터뜨리고 여는 것을 결이라 한다

아침마다 둑을 툭툭 터뜨리고 있다

 

둑은 막기 위해 애써 쌓은 것입니까

한번 안겠다고 물둘레를 두른 겁니까

 

사랑하는 이도 죽고 집도 죽사발 났을 때

전복죽을 끓였다 끝을 보자는 마음으로

 

어린 전복을 씻고 깨끗이 닦고

껍데기의 진주층을 구경하다가

 

펄펄 끓인 죽을 식탁 위에 올리고

우리 모두 한없이 보고 싶을 때

 

죽그릇 위에 조용히 빛이 내렸다

폴폴 피는 김 속에 무지개가 보였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눈을 뜨기로 한다

 

전복 껍질을 물에 담그고 눈을 씻으면

다음날 아기처럼 눈이 밝아지기도 한다고

 

 

                              *월간 우리8월호(통권 제446)에서

                              *사진 : 한라생태숲의 가을 예감(2025. 9. 4.) 

              *위로부터 꾸지뽕나무, 정금나무, 동백나무,백당나무, 마가목, 말오줌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