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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혜향문학' 상반기호의 시(2)

by 김창집1 2025. 9. 8.

 

 

박금리

 

 

너나 나나 메아리에 취한 꾀꼬리다

세상이 즐겁기만 한

노랫소리나 어여쁘고 마냥 봄인 줄 아는

제소리 메아리로 들으며

흡족하여 이 나무 저 나무 사랑하는 척

정작 똥이나 휘갈겨대는

배때기나 노오란 잡새다

외곬에 나무를 뜯는

오색딱따구리를 보니

외려 그 소리가 노래 같아서

흥홍이 일정하고 무난하구나

뿐이랴,

소쩍새는 심지어 부끄러워서

해진 뒤 먼 숲 골짝에서 밤에나 운다

눈치 아는 것들은

새나 사람이나 늘상 배가 고프다

 

소옷쩍다 소옷쩍다

 

 


 

영국사에는 범종梵鐘이 없다 - 양문규

 

 

영국사에는 범종이 없다

 

산과 산 사이로 구름이 낮게 흘러가고

바람 속을 종소리 대신

소똥 묻은 새가 울고 간다

 

스님은 심장을 드러내고 계곡물 소리를 듣는다

서로 가는 것을 묻지 않고,

길이 끝나는 곳으로부터

소리들이 되돌아와 발 디디는 곳마다

종을 울린다

 

물은 흘러가는 것을 묻지 않고 계속 흐른다

 

마음속의 관음(觀音)

종소리 아닌 종이 운다

 

절밖

아름드리 은행나무,

큰 울음

나뭇등걸 속에 내장한 채

하늘을 떠받들고 서 있다

 

 


 

열쇠들 엄태지

 

 

보름달이 떴다 뻥 뚫린 저 구멍

열쇠 구멍이다

안과 밖이 통하는

새들은 환한 구멍을 향해 날아간다

하나씩 열쇠가 되어

저 문만 열면 하늘이라는 것이 열리겠는데

나 저 문밖을 보고 싶어 슈퍼문

계절마다 바닥으로 뻗어가는 풀이며

죽을힘을 다해 울던 벌레들

사그라져 주는 사물들의 고향

저 구명을 열 수 있을까

개가 짖는다 치켜든 주둥이 끝이 아득하다

제 살아온 생이 하 기막혀 저렇게라도 짖어서

저 구멍에 대가리를 들이밀어 보는 것이리라

혹시 열릴까 해서

컹컹거리는 열쇠들

소쩍거리는 열쇠들

 

 


 

출구 진영태

 

 

표지판은 초록색이었다.

"EXIT" 백색 산세리프체로

벽 위에 고정되어 있었다.

무언가 끝나는 곳에 유일하게 남는 빛.

출구는 문이 아니라

커다란 짐승의 입 같았다.

 

통로는 열려 있고 너는 떠났다.

 

아무도 목격하지 못했지만

모든 장면은

너의 부재로 다시 쓰였다.

 

너는 돌아보지 않았다. 화살표는

돌아보지 않을 것을 선택한 방향으로 향했고

초록 불빛은 대합실 내부로 향했다.

 

 


 

가벼운 슬픔 박민교

 

 

날뛰는 부정맥을 겨울은 알고 있다

알 수 없는 두려움에 분분히 지던 꽃잎

초조한 심장의 태도

윤기 없는 해고였다

 

맥락 없는 늪에 빠져 낙엽인 양 생각나니

한없이 풀어지는 목마른 물의 사막

분명히 내가 있는데

내가 나를 못 찾는다

 

빈 가지 불쑥불쑥 얼굴을 내밀 때쯤

화나고 무섭고 아득해도 소용없다

들뜬 열 가벼운 멀미, 용서할 수 있겠다

 

퇴락한 햇살 아래 은결 된 몸짓이라도

은빛 눈꿈 꾸면서 눈 감고 싶었다

마음을 다스려야만

땅에 동백, 다시 피리

 

 

          * 혜양문학회 간 혜향문학2025년 상반기호(통권 제24)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