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새 – 박금리
너나 나나 메아리에 취한 꾀꼬리다
세상이 즐겁기만 한
노랫소리나 어여쁘고 마냥 봄인 줄 아는
제소리 메아리로 들으며
흡족하여 이 나무 저 나무 사랑하는 척
정작 똥이나 휘갈겨대는
배때기나 노오란 잡새다
외곬에 나무를 뜯는
오색딱따구리를 보니
외려 그 소리가 노래 같아서
흥홍이 일정하고 무난하구나
뿐이랴,
소쩍새는 심지어 부끄러워서
해진 뒤 먼 숲 골짝에서 밤에나 운다
눈치 아는 것들은
새나 사람이나 늘상 배가 고프다
소옷쩍다 소옷쩍다

♧ 영국사에는 범종梵鐘이 없다 - 양문규
영국사에는 범종이 없다
산과 산 사이로 구름이 낮게 흘러가고
바람 속을 종소리 대신
소똥 묻은 새가 울고 간다
스님은 심장을 드러내고 계곡물 소리를 듣는다
서로 가는 것을 묻지 않고,
길이 끝나는 곳으로부터
소리들이 되돌아와 발 디디는 곳마다
종을 울린다
물은 흘러가는 것을 묻지 않고 계속 흐른다
마음속의 관음(觀音)
종소리 아닌 종이 운다
절밖
아름드리 은행나무,
큰 울음
나뭇등걸 속에 내장한 채
하늘을 떠받들고 서 있다

♧ 열쇠들 – 엄태지
보름달이 떴다 뻥 뚫린 저 구멍
열쇠 구멍이다
안과 밖이 통하는
새들은 환한 구멍을 향해 날아간다
하나씩 열쇠가 되어
저 문만 열면 하늘이라는 것이 열리겠는데
나 저 문밖을 보고 싶어 슈퍼문
계절마다 바닥으로 뻗어가는 풀이며
죽을힘을 다해 울던 벌레들
사그라져 주는 사물들의 고향
저 구명을 열 수 있을까
개가 짖는다 치켜든 주둥이 끝이 아득하다
제 살아온 생이 하 기막혀 저렇게라도 짖어서
저 구멍에 대가리를 들이밀어 보는 것이리라
혹시 열릴까 해서
컹컹거리는 열쇠들
소쩍거리는 열쇠들

♧ 출구 – 진영태
표지판은 초록색이었다.
"EXIT" 백색 산세리프체로
벽 위에 고정되어 있었다.
무언가 끝나는 곳에 유일하게 남는 빛.
출구는 문이 아니라
커다란 짐승의 입 같았다.
통로는 열려 있고 너는 떠났다.
아무도 목격하지 못했지만
모든 장면은
너의 부재로 다시 쓰였다.
너는 돌아보지 않았다. 화살표는
돌아보지 않을 것을 선택한 방향으로 향했고
초록 불빛은 대합실 내부로 향했다.

♧ 가벼운 슬픔 – 박민교
날뛰는 부정맥을 겨울은 알고 있다
알 수 없는 두려움에 분분히 지던 꽃잎
초조한 심장의 태도
윤기 없는 해고였다
맥락 없는 늪에 빠져 낙엽인 양 생각나니
한없이 풀어지는 목마른 물의 사막
분명히 내가 있는데
내가 나를 못 찾는다
빈 가지 불쑥불쑥 얼굴을 내밀 때쯤
화나고 무섭고 아득해도 소용없다
들뜬 열 가벼운 멀미, 용서할 수 있겠다
퇴락한 햇살 아래 은결 된 몸짓이라도
은빛 눈꿈 꾸면서 눈 감고 싶었다
마음을 다스려야만
땅에 동백, 다시 피리
* 혜양문학회 간 『혜향문학』 2025년 상반기호(통권 제24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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