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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김수열 시집 '날혼'의 시(12)

by 김창집1 2025. 9. 9.

 

 

    --김희숙

 

 

설운 조상님 뼈 빌고 살 빌어

하늘땅 기운 빌어 이름 석 자 얻기 전

그녀는 꽃이었다

산에 들에 구절초거나 연보랏빛 들무꽃이있다

 

팔 들어 허공에 얹으면 노을이 내리고

송락 저편 하늘가에 눈길 머물면

어김없이 바람이 일었다

걸음걸음 궁편이 울고 한삼 끝에 재편이 울었다

울음 사위어 천지사방이 고요일 때 소리 없이

소리 없이 그녀는 울었다

구절초처럼 들무꽃처럼 울었다

 

이승의 연 다하고

문 열어 길 나서면 그녀는 나빌 것이다

열두 문 너머 너울너울 날아갈 것이다

춤인 듯 춤이 아닌 듯

불러도 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아픔도 슬픔도 버리고

버렸나, 하는 미련도 다 버리고

팔랑팔랑 날갯짓에 기대어

하올하올 날아갈 것이다

잠시 머물던 이승에서 그랬던 것처럼

가도 가도 닿지 않는 그 길

춤이 되어 날아갈 것이다

 

 


 

솎고 돌아오는 길

   -고승욱에게

 

 

웃씨 뿌려 웃자란 조팟에서

수눌어 검질 매고 어르신 가르침 받들어

주먹 하나 다닐 정도로 여 린 조 솎아내고

조심조심 돌아오는 길

 

한 줌씩 솎아져 산담에 널린 무더기를 보다가

그날그 미친 시절

무등이왓속칭 잠복 학살터에서

어처구니없이 솎아져 총 맞아 죽고

죽창 맞아 죽고 불더미에 둘러싸여

숨통마저 끊긴 개발시리들이 여럿 어룽거린다

 

임술민란 강 별감이 살았고

쇠 막에선 쇠가 울었고

우영 팟엔 송키*가 푸르던 옛 마을 집터에

조심조심 조를 심고

듬성듬성 고개 내민 조를 솎고 돌아오는 길

 

조를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다 위안 삼아 보지만

아무런 죄 없는 것들을 솎고 돌아오는 길

누군가 대신 솎아져

지금 내가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에

모골이 송연해진다

 

 

*송키 : ‘푸성귀의 제주어.

 

 


 

톱의 마음

 

 

잘려나갈 아름드리 삼나무 밑동 옆에

전기톱을 내려놓는다

 

안전모 쓰고 안전화 신은 한 사내가

큰절 올리고 넙죽 엎드린다

 

요란한 톱 소리가 빨갛게 여문

산딸기를 흔든다

 

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잉

휘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잉

크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잉

흐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잉

으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잉

 

톱의 눈에 핏기가 서린다

톱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톱이 운다

 

 


 

제성마을엔 삼촌들이 산다

 

 

제성 마을엔 사람을 사랑하는 삼촌들이 산다

정뜨르에서 몰래물에서 난민처럼 흩어졌다가

다시는 쫓겨나지 말자며 터를 잡은 제성마을

똥오줌 물 뒤집어쓰면서 물숨 참아 자식들 키우고

솥단지 그을음처럼 검게 타버린 삼촌들이 산다

제성 마을엔 눈물을 아는 삼촌들이 산다

 

제성마을 터 잡을 때 정성으로 심은 왕벚나무

아름드리 그 나무 열두 그루 뭉텅뭉텅 잘려나갈 때

이 나무가 제성마을이라고 이 나무가 죽은 남편의 몸이라고

울며불며 애산 가습 쓸어내린 삼촌들이 산다

 

제성마을엔 어린 왕벚나무가 된 삼촌들이 산다

왕벚나무 열두 그루 어처구니없이 잘려나가고

밑뿌리에 겨우 남은 여린 가지 정성으로 화분에 심어

죽은 남편 어루만지듯 물애기 손주 얼르듯

차라리 나무가 되어 오래도록 함께 살고픈 삼촌들이 산다

 

제성마을엔 삼촌들이 산다

죽은 왕벚나무를 살려내라며 밤잠을 꼬박 지새는

왕벚꽃처럼 화사하고 왕벚나무처럼 아름다운 삼촌들이 산다

 

내일의 회망을 심고 가꾸는 성자(聖者)가 된 삼촌들이 지금 살고 있다

 

 

                                *김수열 시집 날혼(삶창시선, 2025)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