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만첩홍도 – 위인환
움이 튼다
어미를 기다리다
사슴 목이 된 가슴에도
그리움이
사무칠 때마다
읊조렸던 사모곡
마룻바닥에 턱 떨어져
진홍빛 열병 들면
봇물 같은 눈물
만 번의 그리움
속 터지는
봄

♧ 네가 찾아온 날 나는 내게 없었다 - 洪海里
죽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살기보다 더 힘들다는데
어쩌자고 죽고 싶다 죽고 싶다 하는가
죽기 살기로 달려들면
밤인들 어찌 환하지 않겠느냐
길은 천지 사방 상하가 따로 없다
죽는소리 죽는 시늉 하지 말고
가고 싶은 대로
가고 싶은 데로
가거라, 지금 바로 떠나라
숨 쉬고 있는, 눈을 뜨고 있는 지금,
여기가 극락이라는데
죽자 죽자 하지 마라
섬마섬마 하며 크지 않았더냐
길이 없으니 밤이 얼마나 환하냐
네가 찾아온 날 나는 내게 없었다.

♧ 부유하는 삼각주 – 전홍규
너는 본적지가 강 언저리라고 했다
산 물과 들 물이 만나는
이쪽 물길과 저쪽 물길이 만든 사근동,
이제 번지수는 있으나 살 수 없는
그곳은 아주 오래된 사진 속에서
흐릿한 마을 풍경이 증명하고 있다.
비가 와 큰물이 넘쳐흐르면
너의 젖지 않는 가난한 번지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거나 허공이 된다
간혹 물길이 몸뚱이를 갈라쳐
한편을 내주거나 살찌우기도 하지만,
네가 살지 않는 그 번지에는
아직도 말소되지 않는 것들이 산다.
그곳에는 물길에 떠내려가지 못하는
번지가 필요로 하지 않는 삶만이
오래된 연정의 흔적으로 늘 흐른다.

♧ 저 강을 건너지 마오 – 정순영
이 땅에 태어나
자연을 향유享有하고 살면서도
누가 생명을 주었는지
누가 자연을 만들어 운용하고 있는지 모르는
친구여, 저 강을 건너지 마오
유년기의 순박한 꿈도
청년기의 싱그러운 정열도
우리가 행복을 찾아 나선 인생길은 고난과 슬픔뿐이고
육신은 시들어서 낙엽 지고 있는데
친구여, 저 강을 건너지 마오
누가 나무십자가에서
누구를 위하여 피를 흘렸는지를 듣고 믿음으로
하늘빛 깃든 영혼이 거룩한 하늘을 숨 쉬면
죽어서 다시 사신 이가 오시리니
친구여, 우릴 데리러 오시는 이의 손을 잡고 섬광閃光체
본향으로 돌아가리니

♧ 슬픈 유람 – 김정원
압록강에서 중국 유람선을 타고
인적 드문 북한 땅을 바라본다
국경선에 바짝 다가가
띄엄띄엄 초소가 있는 철조망을 따라
물 위를 달리는 남한 사람들은
산삼을 찾아 헤매는 심마니인가
어쩌다 북한 사람이 눈에 띄면
아주 신기한 외계인을 발견한 것처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소리친다
“저기, 북한 사람이다!”
“어디, 어디?”
공산당은 빨갱이고
빨갱이는 머리에 뿔 달린 반인반수와 같아서
박멸해야 할 괴물이라고 멸공을 강제로 주입해온
반교육, 반공 교육을 신줏단지로 모신 연사들이
교내 웅변대회에서 힘주어 혐오를 외치던 말처럼
그 놀란 소리와 손가락에 나는 마냥 서글퍼져서
호주머니에 귀를 집어넣고 강물만 내려다보는데,
이윽고 떨어지는 눈물이 굵은 빗방울이다
검은 가마우지 수백 마리가
수상한 사람들을 보고 언짢아서 하나같이 날아오르는
해거름, 녹슨 철교 밑을 지날 때
*월간 『우리詩』 9월호(통권447호)에서
사진 : 흰닭의장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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