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무등이왓
콩타작 뒷그루
싹이 튼 이삭콩
손 놓친 아이처럼
파르르 떨고 있는,
육거리 뚫린 길 따라
포위망 좁혀오고
영문도 모른 채
총부리에 숨져간
그 마을 사람들
돌아올 줄 모르고,
딸아이 원혼이었나
애기동백
툭
진다

♧ 여섯 개의 점으로 쓰인 비문에 대하여
오래 묵은 슬픔이 버짐처럼 피어나요 찢어지던 통곡은 아득한 기록인가요 수천 번 아니 수만 번 주저앉은 문장인가요 썼다 지우고 썼다 지우고 끝내 못 보낸 문자처럼 위령비 비문에 찍힌 여섯 점 마른 눈물인가요 죽은 사람은 있는데 죽인 사람은 어디 있나요 피해자는 간데없고 희생자만 남겨놓은 수상하고 치욕적인 그 문장을 용납할 수 없잖아요 동포의 학살을 거부한 그게 무슨 죄 인가요 차라리 빨갱이 폭도로 남아 잘못된 역사를 증언할래요 손가락 총 하나로 이승 저승이 나뉘고 벼랑 끝 내몰려도 희생자라 적지 마요 잘난 체하지 마라 나서지도 마라 모난 돌 정 맞는다 큰소리 내지 마라 손가락질에 죽어나간 옳고 바른 사람들 그들을 겨눈 손가락 뭉툭 잘라 제단 위에 바치고 싶어요 점 하나 점 둘 점 셋 점 넷 점 다섯 점 여섯 이것이 마지막 눈물이길 바라며 터지는 분노를 삭여 말없는 위령비가 섰네요

♧ 성산포 일몰
그 섬의 동쪽에서
오래도록 서성였다
사유하고
질문하라
묵묵히 견딘 하루
그 섬의
비망록에는
후기가 없었다

♧ 동백 졌다 하지 마라
탄압이면 항쟁이다
마지막 저항 같은,
동포의 학살을 거부한다
운명의 뿌리 같은,
핏줄이 핏줄에게 보낸
무언의 당부 같은,

♧ 꽃들의 예비검속
-코로나19
유채꽃 일생 위로
트랙터가 지나갔다
등뼈가 무너지고
혀가 잘려 나갔다
더 이상
최후변론은
필요치 않았다
---
* 코로나19 사대로 20만 명 가까이 방문하던 축제까지 취소했지만, 상춘
객과 관광객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자 서귀포시가 결국 유채꽃밭을 갈
아 엎었다.
*김영란 시집 『동백 졌다 하지 마라』(한그루, 2025)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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