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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조한일 시집 '낮은말 받아쓰기'의 시(10)

by 김창집1 2025. 9. 20.

 

 

물구나무서기

 

 

거꾸로

보는 일로

두 눈이 맑아지고

 

똑바로

보는 일로

두 눈이 흐려져도

 

뒤집힌

이 땅의 풀잎

다시 세울

저기,

저 봄

 

 


 

꽃다발

 

 

박수 한번 받고서

거실 벽에

기댄

 

비바람 이겨냈던

맷집 좋은

시든

 

사람에

꺾였으면서

모른 척

안기는

 

 

 

 

포스트잇

 

 

저마다의 이름이

삭제되지 않도록

 

포스트잇 온몸으로

벽을 타고 오르고

 

우연히 생겨난 메모장,

기억을 깁고 있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이제 더 쓰지 않게

 

거센 바람 견디고

한겨울 버텨내는

 

이태원 좁은 골목을

움켜쥔 저 접착력

 

 


 

구둣주걱

 

 

퍼즐 같은 이 도시에 들어맞지 않는 나를

뒤꿈치 추켜올려 우쭐하게 해준다

고단한 걸음걸이를

달래주는 나의 후견

 

온종일 딛고 걷는 땅 닳아가는 구둣발

믿고 뒤를 맡기고 쓰다가 버리라며

뒤에서 날 들어 올리는

아주 작은 포클레인

   

 


 

2월의 사생활 보호 구역

 

 

잔설은 절절하고 칼바람은 분주해요

겨울 끝자락에선 조급함이 입맛에 맞죠

 

2월은

키 작고 배고픈

스물여덟 단발머리

 

질펀한 결핍은 두루 나눈 까닭이라

궁한 게 아니거든요 꽁다리가 없을 뿐

 

공간이 비워진 만큼

충분한 그녀의

사생활

 

 

                *조한일 시집 낮은말 받아쓰기(가히, 2025)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