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까치무릇
그립다는 말은
하는 게 아니다
너처럼
먼 하늘 보며
꽃몸 하나에 생각 한 송이
곱게 피어 있으면
그리움이다

♧ 장미 한 송이 드립니다
바람이 읽어 내고
고개를 끄덕이는
시붉은 고백록입니다
한 잎 한 잎
부풀어오른 내 마음
꽃부리 가득
채워 낸 언어입니다

♧ 배롱낭꼿
뜨건 몸
햇살에 비벼대던 배롱낭*
긴 몇 밤 건너더니
꽃을 내기 시작한다
동글동글 부픈 꽃망울들
내 안에
주책의 나이에도 매달린다
피고 떨어지고 여물고 피고
정갈한 옷매무새
활활 백 날이 탄다
*배롱낭 : ‘배롱나무’의 제주어.

♧ 시의 몽환
오랜만에 시와 마주 앉았다. 그를 내 종이로 이끌었으나 요지부동이다. 이윽고 나는 메마른 미라. 그의 초롱한 눈이 내 얼굴 훑으며 그의 종이 위에 나를 쓴다. 시가 나를 어떻게 썼는지는 몰라도 그 종이 위에서 동물원 냄새가 풍긴다. 그럴 때마다 나는 되돌아오는 목숨. 시가 나를 떠난다. 내 연필은 그의 손에 들려 있고, 그가 남긴 종이는 또다시 백지다

♧ 배반의 능소화
한때는 연인처럼
마당의 능소화 고운 웃음
내 눈으로 쓰옥 쏙 안겨 들더니
내 나이 칠순
차츰 쭈그령이 돼 가는 모습
싫었는 듯
울 밖으로만 나가며 피네
고개 홱 돌린
목이 긴 뒷덜미
달아나려 하네
*양진형 시집 『나 다시 필 거야』 (한그루, 2025)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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