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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문순자 시조집 '가끔 섬으로 돌아가 울고 싶을 때가 있다'(9)

by 김창집1 2025. 9. 26.

 

 

장갑의 힘

 

 

면장갑 그 위에다 고무장갑 겹쳐 낀다

웬만한 농약쯤은 갑옷으로 막아내는

감귤원 저 애물단지

깍지벌레 명주달팽이

 

저농약 고집하며 쳇바퀴 도는 봄날

무름베개 어머니 머릿니 눌러 잡듯

꼼짝 마 쪽집게 간다

그 말조차 사치 같은

 

 


 

애기땅빈대

 

 

목숨 걸고 하는 일 아무도 막을 수 없네

 

섭씨 35도 타이벡 감귤밭 가장자리

 

이름값 밥값 하느라 엉덩일 들이미네

 

 


 

열과를 따다, 문득

 

 

사람이나 짐승이나 식물도 매한가지다

물 먹다가 체하면 약도 없다 했는데

빗나간 태풍이 남긴

사나흘 저 물폭탄

 

폭염과 긴 가뭄에 목 타던 타이벡 감귤

이게 웬 떡이냐 날름날름 받아먹다

폭우가 그치기도 전

쩍쩍 터진 열매들

 

몇 차례 열과 끝에 때늦은 여름순이 났다

저 살겠다고 못 본 척 눈감은 어미목의 배신

물컹한 열과를 따다

그만 속이 터진다

 

 


 

몸말

 

 

서귀포 치유의 숲에 농인들이 모였다

해먹체험 앞두고 막대기 스트레칭 시간

옴맘마 아파파파파 동시다발로 터진다

 

몇 십 년 갇혀있다 터져 나온 소리인지

분명 아프다면서 활짝 핀 저 웃음꽃

손말도 입말도 아닌 즐거운 비명 같은

 

 


 

새별오름의 가을

 

 

멜 들었져 멜 들었져

오름에 멜 들었져

 

와글바글 가을 햇살

와글바글 억새 무리

 

그물에 걸려든 바다

윤슬로 파닥인다

 

 

    *문순자 시조집 가끔 섬으로 돌아가 울고 싶을 때가 있다(작가, 2025)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