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장갑의 힘
면장갑 그 위에다 고무장갑 겹쳐 낀다
웬만한 농약쯤은 갑옷으로 막아내는
감귤원 저 애물단지
깍지벌레 명주달팽이
저농약 고집하며 쳇바퀴 도는 봄날
무름베개 어머니 머릿니 눌러 잡듯
꼼짝 마 쪽집게 간다
그 말조차 사치 같은

♧ 애기땅빈대
목숨 걸고 하는 일 아무도 막을 수 없네
섭씨 35도 타이벡 감귤밭 가장자리
이름값 밥값 하느라 엉덩일 들이미네

♧ 열과를 따다, 문득
사람이나 짐승이나 식물도 매한가지다
물 먹다가 체하면 약도 없다 했는데
빗나간 태풍이 남긴
사나흘 저 물폭탄
폭염과 긴 가뭄에 목 타던 타이벡 감귤
이게 웬 떡이냐 날름날름 받아먹다
폭우가 그치기도 전
쩍쩍 터진 열매들
몇 차례 열과 끝에 때늦은 여름순이 났다
저 살겠다고 못 본 척 눈감은 어미목木의 배신
물컹한 열과를 따다
그만 속이 터진다

♧ 몸말
서귀포 치유의 숲에 농인들이 모였다
해먹체험 앞두고 막대기 스트레칭 시간
옴맘마 아파파파파 동시다발로 터진다
몇 십 년 갇혀있다 터져 나온 소리인지
분명 아프다면서 활짝 핀 저 웃음꽃
손말도 입말도 아닌 즐거운 비명 같은

♧ 새별오름의 가을
“멜 들었져 멜 들었져”
“오름에 멜 들었져”
와글바글 가을 햇살
와글바글 억새 무리
그물에 걸려든 바다
윤슬로 파닥인다
*문순자 시조집 『가끔 섬으로 돌아가 울고 싶을 때가 있다』(작가, 2025)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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