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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김종호 시집 '강나루의 대화'의 시(9)

by 김창집1 2025. 9. 28.

 

 

양말

 

 

오일장에서 아내가

싸구려 양말을 고르면서

내 것은 비싼 것을 고를 때

아내를 뿌리치고 열 켤레에 삼천 원 하는

싸구려를 오늘까지 신고 다닌다

아내는 떠나고 그 질긴 양말도 빵꾸가 나고.

오일장에서 싸구려 양말을 손에 들자

괜스레 눈물이 나려 한다

주변머리 없는 나를 등에 지고

소처럼 걸어온 발이 가여워서

무늬가 있는 비싼 양말을 골랐다

아침에 발을 씻고 양말을 신으면서

슬쩍 아내를 보니 미소를 짓고 있다

이제 길이 멀지 않다

마른 데로만 골라 다니거라

절뚝거리는 나의 짐꾼아!

 

 

                                                                                                 *변시지
 

오막살이

 

 

어머니!

그 집이 그립습니다

 

네 오뉘가 오글거리던 집

늘 갈매기 을음소리가 살던

바닷가 우리 집이 그립습니다.

저녁이면 온 식구가 둘러앉아

제비 새끼처럼 재재거리며

양푼 하나 기득 퍼 온 보리밥

허겁지겁 배를 채우고 곯아떨어지면

온 밤을 파도 소리만 설레던 집

 

어머니!

그 집이 그립습니다.

 

 


 

?, 통일

 

 

패거리 정치

패거리 컬처

패거리 의료

패거리 시비(是非)

 

사통팔달

서울의 거리는

패거리

 

꽉 막힌 하수구

 

 


 

어떤 정의(正義)

 

 

한낮에 등불을 들고

그가 정의를 외칠 때

사람들은 구세주를 만난 듯

거리로 뛰쳐나와 환호하였다

 

그의 이마에 정사각형은

햇살처럼 눈부시고

그의 공정과 평등과 정의

범할 수 없는 사원이었다

 

이윽고 잠시 빌려온

디오게네스의 등불이 꺼지자

사람들은 이상한 어둠 속에서 길을 잃었다

그의 이마에 금빛 정사각형을 두고

초등학생들은 정사각형이 아니라고 한다

 

누구를 위한

초현실적 정의인지, 그의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을

드디어 의심하기 시작하더니 사람들은

나폴레옹의 정의’*를 떠올리며

하나 둘, 고개를 저으며 돌아섰다.

 

산성 위에 높이 서서, 그는

여전히 꽹과리를 울리지만

사이비 교주의 허언인 듯

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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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폴레옹의 정의 : 영국의 풍자소설 동물 농장에서.

 

 


 

 

 

신은 인간에게

자유라는 날개를 달아주고

하늘과 땅 사이에

수평선을 그어놓았다

 

인간이

선을 넘는 순간

에덴은 폐쇄되고

죽음의 들판으로 내몰렸다

 

죄의 족쇄를 풀려고

법을 만들고, 인간은

위대한 이성,

인간 승리를 자축하였다

 

법은 수단으로 전락하고

죄보다 강한 것은 없다

 

시간은 쉬지 않고

맹목의 과학기술이

바벨탑을 완성하는 날

최후 심판의 날이 될 것이다

 

 

                  *김종호 시집 강나루의 대화(푸른생각, 2025)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