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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오광석 시집 '귓속의 이야기'의 시(8)

by 김창집1 2025. 9. 30.

 

 

허벅 장단

 

 

물허벅을 등에 지고

용천수 길러가는 발걸음

안긴 아이는 햇살을 받으며 곤히 잠들고

여인은 걸으며 노래를 흥얼거린다

 

무자년 학살에 산으로 바다로

사내들은 떠나 돌아오지 못하고

섬엔 여인들의 숨결만 남아

물허벅 두드리는 소리 구슬프게 울린다

 

고된 삶에도 정을 나누며

힘든 노동 속에도 피어난 노래꽃

척박한 땅에서 피어난 강인함

 

용천수에서 삶의 기쁨과 슬픔을 담아

돌아오는 여인들의 삶은 깊고 넓다

 

오래도록 기억될 여인들

물허벅 속에 담긴 이야기들

 

 


 

좁은 돌집에 우리 모여 살았지

 

 

  허름한 벽채와 겨우 빗물을 막는 낙선동 초가 밑에 열댓 명이 누워 잤지 바닥에 깔린 명석 위를 돌아누울라치면 걸리는 몸뚱이들 손을 뻗으면 만져지는 큰 누이의 젖가슴 좁은 돌집에 모여 살았지 해가 뜨면 해가 질 때까지 돌성을 쌓아올리는 우리는 세상 속에 좁은 세상을 만들었지 험상궂은 경찰이 또각또각 다가오면 움츠린 채로 눈을 내리깔아 라고 누이는 말했지 성 밖으로 나가보고 싶어 성 밖에 있는 우리 집에 가보고 싶어 밤마다 누이에게 속삭였지 그때마다 눈물방울만 훔치던 누이 돌아오지 않는 아비 어미를 기다리며 돌성 입구 바닥에 그림을 그리며 놀았지 산 밑으로 마을길을 따라 그리고 돌담길을 따라 그렸지 입구 옆으로 뒷간을 그리고 마당을 그렸지 가운데 작은 집 마루에 아비 어미 누이를 그리고 초가 뒤로 그리는 대나무 옆으로 팽나무를 그릴 때 바람이 불어 형클어졌지 우는 소리가 들렸지 성 입구에 자라는 팽나무가 잃어버린 가족을 찾아 울었지

 

 


 

검은 겨울의 꿈

 

창고에 고구마처럼 쌓여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바다로 나가 돌아오지 않는 검은 겨을

떠난 사람들이 간 곳을 가늠하며

몽둥이에 두들겨 맞아 아픈 아이를 안고

밤을 지새웠다

 

징역살이 판결을 내린

근본 없는 재판 앞에 선 그녀

주정공장을 떠나 검은 바다를 마주할 때

다가오는 낯선 공포에

나는 죄가 없다고 소리 없이 울었다

 

심장 깊은 자리에서 솟아난 억울함이

고열이 되어 찾아온 날

비바람 맞으며 바다로 나기는 배 안

울렁거리는 의식 속에

난리통에 떠나간 지아비가 찾아왔다

 

다시는 떨어지지 말자

바다 너머 서천꽃밭에

초가집을 짓고 살자

지아비에게 이끌려 찾아간 곳

하얀 환생꽃들 사이

뛰어노는 아이의 웃는 얼굴에 따라 웃다가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이 눈가를 쓸었다

 

시린 눈을 비비며 떠보니

여전히 차가운 검은 겨울

사방이 막힌 낯선 교도소 방

홀로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귀가

 

 

오도롱* 외가에 맡겨진 어린 동생을 데려

광평 너머 함박이굴** 지나

정존까지 걸어다녔다

 

인적 드문 구불구불한 옛길

제삿날이 되면 지나칠 때마다

닭살처럼 올라오는 한기

쉬이 쉬이 소리가 얹혔다

대나무들이 내는 소리인지

덜 익은 보리들이 부딪치는 소리인지

울음 섞인 노래처럼

입 막고 부르는 노래처럼

 

뒤돌아보면 그치는 소리

길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

누군가 부르는 노랫소리

길 밖 한 걸음만 벗어나면

삼켜질 듯 진한 어둠

저편에서 부르는 구슬픈 노래

그 소리를 들으며

형제는 달빛을 가로등 심아

구불구불 길을 거슬러 올라갔다

바다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산마을로 돌아가는 형제를 밀었다

 

길을 걸어올라가는 밤마다

소리가 들리는 이유를 형제는 몰랐다

산으로도 바다로도 가지 못한 채

길옆 어던가에서 헤매는 노랫소리

어른이 되어야만 알 수 있다며

몰래 눈물방울 훔치던

외할머니의 혼잣말처럼

아무것도 몰랐다

 

하나도 무섭지 않은

산마을로 돌아가는 귀갓길

바람이 부르는 진혼곡

형제는 어려서 바람소리로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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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2. 제주43 당시 피해 마을.

**노형동에 있었던 제주43 당시 사라진 마을.

 

 


 

너산밧

 

 

허물어져 가는 돌담

집터만 남은 자리

희미해진 올레

여전히 너는 서 있다

또렷하게 떠오르는 사람들

돌아오지 못하고

그냥 너만 살았다

너만 마을터를 지키고 있다

빌레못으로 숨어들어간 사람들

출구 없는 어둠 속을 헤매다

육신이 녹아 사라지면

산을 내려온 바람을 타고

돌아오는 사람들

홀로 살아 터를 지키는

너만 살았다고 아무도 타박하지 않아

그냥 오래된 이야기라

스쳐가는 사람들에게

나는 여전히 살아간다고

마을을 지키고 있다고

입구에서 바람이 불 때마다

팔을 들어 흔들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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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월읍 어음리에 있었던 제주43 당시 사라진 마을.

 

 


 

자리왓* 돌담

 

 

돌과 돌 사이 구명으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구멍 속을 들여다본다

무명옷의 아이들이 돌담 사이를 지나친다

구멍은 시간이 새어나오는 틈

한 걸음 옆 구멍을 들여다본다

아이들은 보이지 않고

짐을 지고 떠나는 사람들

마을을 등진 채 걸어간다

구멍 너머 공간은

돌 사이에 머문 시간의 기억들

시간은 돌담을 따라 흘렀다

돌과 돌 사이를 지나쳐가다

다시 구명 속을 들여다본다

폐허가 된 마을이 보인다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

구멍마다 보이는 무덤들

대나무들만이 곧게 지키고 있다

돌담 끄트머리에 이르러

지나온 길을 돌아보면

잡풀 가득한 올레

마을의 흔적이 보인다

떠나간 아이들의 목소리가

돌담 사이로 흐르는 바람에 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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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애월읍 봉성리에 있었던 제주43 당시 사라진 마을.

 

   

                *오광석 시집 귓속의 이야기(도서출판 북인, 2025)에서